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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너무나도 부러운 ‘말썽’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7호 31면

얼마전 외신에서 영국의 해리 왕자가 또 말썽을 부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헤드라인만 보고 ‘이번에도 광란을 부렸겠지’라고 지레 짐작했다. 해리 왕자는 그동안 나체사진 소동, 스트립 클럽 밤샘 술파티 등 툭하면 타블로이드 신문의 1면 톱기사를 장식해 왔다. 영국 왕실의 골칫거리다.

이런-. 본문을 읽으니 오산이었다. 그의 인터뷰가 문제였다. 현역 영국 육군 전투헬기 조종사인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20주간 근무를 최근 마쳤다. 두 번째 아프가니스탄 파견이었다. “임무 도중 탈레반을 사살한 적이 있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시인하면서 한마디 덧붙인 게 화근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박스와 같은 게임기를 즐기는 나로선 재미있었다(a joy).”
그는 소문난 게임광이기도 하다. 해리 왕자가 휴식 시간에 동료와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사진이 인터뷰 기사와 함께 나간 건 결정타였다.

당장 해리 왕자가 인명을 경시한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탈레반 대변인은 “비난할 가치도 없는 발언”이라고 쏘아붙였다. 영국의 반전단체도 해리 왕자 비판에 가세했다. 이참에 해리 왕자의 난봉꾼 이미지를 벗겨내려 했던 영국 왕실이 곤경에 처했다고 한다. 영국판 병역 논란이다.

한국에서도 병역 논란이 불거졌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두 아들이 모두 병역면제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미국 변호사인 장남은 신장·체중 미달로, 대학교수인 차남은 통풍으로 각각 면제 판정을 받았다. 벌써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잔뜩 벼르고 있다.

체중 미달은 낯설지 않다. 1997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두 아들도 체중 미달로 군대를 가지 않았다. 김 후보자의 장남이 신체검사를 받았을 당시 병무청 기준에 따르면 키가 1m64㎝~1m65㎝일 경우 몸무게가 43㎏에 미치지 않으면 면제가 됐다. 뼈 마디가 아픈 통풍은 보통 나이가 많을수록 걸리기 쉽다. 20대에선 보기 드문 질병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있는 집안 자제들은 평범한 또래에 비해 왜 이렇게 다들 부실할까.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데 김 후보자는 아직까지 해명을 안 내놓고 있다.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입을 다물었다.

언제부터인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때마다 병역문제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까지 더해 이른바 ‘청문회 3종 세트’란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대부분 국민은 이런 소식에 씁쓸하다. 정상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한 게 억울하고 손해를 봤다는 생각마저 들 수 있다.

차라리 해리 왕자의 치기 어린 말썽이 부러울 따름이다. 참, 영국은 모병제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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