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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지놈 왜 많을까…]

중앙일보

입력

작은 식물에 불과한 고추의 유전자 수가 인간의 것보다 훨씬 많다.

고추의 유전자 수는 8만개 정도이며 인간은 3만~5만개에 불과하다. 벼의 유전자도 5만개나 된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지놈 기술에 힘입어 식물의 유전적인 신비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동물보다 유전자 수가 많은 것도 여러 종류이며, 그 기능 또한 아주 다양하다.

동물에 없는 각종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간에 '식물의 재발견' 작업이 한창이다.

유전자를 건물이라고 가정할 때 벽돌에 해당하는 염기 숫자를 보면 식물이 간단한 생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백합이나 달리아.글라디올러스와 같은 알뿌리 식물의 염기 수는 인간의 5~10배로 추정된다.

인간의 염기가 32억개 정도이므로 이들은 1백50억~3백20억개를 가진 셈이다. 밀은 1백60억개나 된다.

식물 중 지놈 크기가 적은 것에 속하는 애기장대도 염기가 1억2천만개에 이르는 반면 대장균은 5백만개,효모는 1천2백만개에 불과하다.

지놈 구성에서도 식물은 독특하다.박테리아 등 미생물은 대부분 염색체 한 개가 전체 지놈을 구성하고 있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염색체와 세포 속의 발전소 격인 미토콘드리아가 각각 지놈을 갖고 있다.

식물은 염색체.미토콘드리아는 물론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도 별도의 지놈을 갖고 있다.

동물들은 종이 달라도 유전자의 차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 지놈은 원숭이와 99%, 쥐와는 95%나 같다.

그러나 토마토와 애기장대간에 동일한 유전자는 7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상에 30만종에 달하는 식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식물의 유전자는 너무나 다양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과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점도 이런 유전자의 다양성 때문이다. 유전자에 따라 빛을 받아들이거나, 특이한 영영소를 만들어내는 등 역할이 제각각 다르다.

이런 기능을 연구하면 생명의 신비를 벗기는 것은 물론 산업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면 식물은 왜 이렇게 다양한 유전자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연구센터 최도일 박사는 "땡볕이 내리 쬐면 동물은 그늘로 피하면 되지만 식물은 움직일 수 없으므로 있는 자리에서 땡볕 뿐 아니라 다양한 환경적 악조건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식물의 유전자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식물은 '빨주노초파남보'와 같이 빛 종류 별로 빛을 받아들이는 단백질을 가지고 있으나 동물은 그렇지 않다.

단백질은 유전자들이 합심해 만드는 물질로 사람의 당뇨병을 막아주는 호르몬인 인슐린도 그 일종이다.

식물의 생체 방어 기능도 동물과는 다르다. 동물은 병균이 칩입하면 면역 체계를 발동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여러 종류의 병원체를 상대하도록 한다.

그러나 식물은 면역 체계나 피가 도는 것과 같은 순환계가 없다.

그래서 아예 병균을 죽이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 병균의 피부를 녹여 죽일 수 있는 키틴에이즈나 글루칸에이즈라는 물질이 대표적이다.

지놈 지도가 완성된 애기장대의 경우 유전자의 11.5%인 2천7백개가 생체방어 기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다. 그만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양의 유전자가 필요한 것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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