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속 중국경제 대장정] 13.서부의 첨단기지-시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안(西安)은 첫 중원통일을 이뤄낸 시황제(始皇帝)의 위용이 2천년 세월을 넘어 오늘에도 살아 숨쉬는 고도(古都)다. 초(楚)나라 패왕(覇王)이 '산을 뽑아 낼 힘(力拔山)'과, '세상을 덮을 기세(氣蓋世)'로도 차지하지 못했던 땅. '중원(中原)의 사슴을 쏘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바로 그 중원이 시안이다.

이곳엔 지금 2천년 고색(古色)을 벗는 작업이 한창이다. 서부대개발의 붐을 타고 국내외 자본이 몰려 들면서 초 현대식 건물이 속속 올라가고, 첨단기술단지엔 세계적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중국지도를 펼쳐들면 광활한 서북방면의 최대 도시인 시안은 베이징과 서북을 연결하는 유일한 요충지다. '시안의 사슴을 쏘는 자가 서부를 얻는다'며 개발열기가 남다른 이유가 거기 있었다.

직사각형 성곽으로 둘러쳐진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중심가 중루(鐘樓) 사거리에선 지난 8월말 잇따라 두차례의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8월30일엔 시안 최초의 매머드 쇼핑몰 카이위안상청(開元商城)이 준공 테이프를 끊었다. 바로 다음날에는 맥도널드(麥當勞)가 이 빌딩에서 화려한 개업식으로 흥을 돋궜다.

대우중공업 김형택(金炯澤)시안지사장은 "철저한 입지조사를 마친 후 개점하는 맥도날드가 서부 최전방 지점을 이곳에 연 것은 의미심장하다"며 "서부로 가는 돈과 기술이 시안으로 온다는 상징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시안은 5억4천만달러의 외자를 들여와 3억6천만달러에 그친 청두를 앞질렀다.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산시상회 자오스청(趙實誠)처장은 "서부개발의 요충지는 누가 뭐래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와 시안"이라며 "번번히 청두에 뒤지던 외자유치 실적이 지난해에 역전됐고 올해는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외국자본이 청두보다 시안을 택한 이유는 뭘까. 중국 최고의 관광도시인만큼,관광지.유적지 개발을 통한 관광산업에 돈이 몰릴 것으로 지레 짐작한 취재팀에게 趙처장이 안내한 곳은 뜻밖에도 시 남서쪽의 첨단기술산업개발구였다.

趙처장은 "최근 IBM.필립스.후지쓰(富土) 등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 연구.개발센터를 세웠고 휴렛팩커드(HP)는 전자상거래센터를 지을 계획"이라며 "현재 3천3백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이 중 외국기업이 4백여개나 된다"고 자랑했다.

시안엔 고적(古蹟) 못지않게 인력.기술 등 첨단 인프라가 풍부하다. 대학만 43개에 연구소도 2백28곳으로 인력자원이 베이징.상하이에 이어 세번째로 풍부하다. 세계의 돈이 몰리는 것도 이런 자원을 노려서다.

개발구 관리위원회 발전연구원 왕눙(王農)부주임은 "시안의 첨단인력과 기술력에는 '역사의 역설'이 담겨있다"며 "냉전시대 잘못된 국방정책이 시안을 군수산업의 요충지로 만들었고, 그것이 오늘날 서안의 첨단 인프라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64년부터 미국과의 3차대전을 걱정한 마오쩌둥(毛澤東)은 '3선 기지건설'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제공권에서 뒤지던 중국은 미국의 폭격에 대비해 1선 동부와, 2선 중부의 군수산업을 3선인 서부 오지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륙 한복판인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에 석유화학공단, 교통의 오지인 충칭(重慶)엔 자동차공장, 베이징에서 가장 먼 성인 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성에 광공업기지 등이 3선 방어전략에 따라 지어졌다. 毛는 이를 위해 63~65년 예산의 40%를 쏟아 부었다.

시안으로 인공위성 발사체 등 인공위성 관련 군수시설이 옮겨진 것도 이때다. 서부내륙에 위치한데다 세계 문화유적의 고장인만큼 미국의 폭격에서 비교적 안전할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毛의 발상은 10년도 못돼 터무니 없는 기우로 판명났고,오지에 세운 첨단 군수산업기지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경제성은 외면한 채 군사전략만 고집해 산골짜기에 공장을 짓다보니, 다른 산업과 연계도 안되고 유지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개발구 王부주임은 "폭격을 피하는 데만 신경을 써 공장을 산속 깊이 지어 놓기 일쑤였다"며 "시안의 연구소들도 처음엔 산 속에 있다가 80년대 개혁.개방이 본격화하면서 시내로 들어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시안은 서부 오지 군수산업기지 중 최초로 군사기술을 상업화(軍轉民)하는데 성공했다. 시안이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발한 인공위성 발사체와 컬러브라운관.민간여객용 항공기가 그것들이다

여기에 서부개발 붐이 보태지면서 시안은 재도약의 날개를 달고 있다. 인공위성과 관련된 연구소와 국유기업이 개발구에 몰려들었고, 여기에 필요한 첨단인력 양성을 위해 공과대학이 줄줄이 생겨나면서 서부 진출을 노리는 외국기업들이 첫번째로 꼽는 도시가 된 것이다. 毛의 역사적 실패가 오히려 시안을 첨단도시로 거듭나게 한 묘약이 된 셈이다.

趙처장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 비능률의 대명사로 전락한 서부 도시 군수산업체의 개혁과 민영화는 서부대개발 5대 사업중 하나로 정해질 만큼 중대한 문제"라며 "이는 군수산업 기술을 첨단상업기술과 접목해 인력과 외자를 끌어모은 시안식 개발 모델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