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 시대 한국농업의 새 길]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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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라운드(UR)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됐지만 허술한 구석들이 많았다.그러나 뉴라운드에선 적당히 피해나갈 방법이 없다."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박사는 뉴라운드와 UR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UR 체제에서 외국 농산물은 높은 관세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기 힘들었다.

특히 쌀은 스스로 들어올 수 없었다. UR협정에 따라 일부(매해 국내 소비의 0.4%)를 의무적으로 수입했지만, 공업용으로 공급하기 위해 정부 창고로 들어갔고 시중에는 거의 풀리지 않았다.

가격 폭락이나 농가부채 문제가 그동안 시장개방에 대비한다며 많은 자금을 지원한 탓에 공급이 늘어나면서 생긴 것이지 외국 농산물 때문은 아니었다.

崔박사는 "UR 때는 미국.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가들이 농산물을 공산품처럼 세계무역기구(WTO) 질서에 포함시키는 것이 최대 목적이었다"며 "이제 그 관문을 통과한 이상 실익을 챙기려는 본 경기를 벌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농산물 수출국가들은 한국의 쌀시장에 대해 관세화 유예와 함께 의무수입물량을 4%로 낮춰 주었다. 농산물에 대한 관세율 감축폭이 평균 23%(1995~2004년)로 정해졌는 데도 각국이 보호하고 싶어하는 농.축산물(한국의 경우 보리.콩.쇠고기 등)은 10%만 줄여도 되는 예외조항에 동의했다.

UR협상에 한국 대표로 참여했던 최양부 신식품유통연구회장은 "사실 UR는 첫 농산물 개방이라서 심리적 충격만 컸던 셈"이라며 "뉴라운드에선 당장 정부의 쌀수매가 어려워지고 관세를 더 낮춰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농.축산물로 바꾸려 해도 거의 모든 농산물의 관세를 인하해야 하므로 해답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뉴라운드 후속 협상까진 3년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은 2년 뿐이다. 뉴라운드의 일정상 2003년 3월 말까지 당사국끼리 협상을 벌여 관세율 인하폭 등을 정해야 한다. 또 2003년 말에 열릴 각료회의에 나라별로 이행각서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이 농업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이해 관계가 있는 나라와 별도로 '주고 받는 실질적 협상'을 해야 한다.

UR 때 선진국으로 분류된 나라들이 '6년 동안 36%'(개도국은 10년 동안 23%)의 비율로 관세를 낮춘 점을 볼 때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충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높은 관세로 보호를 받아온 마늘.고추.보리.콩.대추.잣.쇠고기 등은 브랜드를 내세우든 신선도로 경쟁하든 특화된 전략 없이는 수입 농산물과 가격경쟁부터 안된다.

쌀에 대해 농림부측은 "재협상을 2004년에 하므로 시간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3년에 각국이 이행각서를 제출하면 재협상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행각서에 적힌 원칙이 2004년 협상에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쌀은 94년 UR협상 당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태국 쌀값을 기준으로 정한 4백%의 관세상당치(관세를 부과할 경우의 최고관세율)를 중국 기준(약 8백%)으로 바꿔야 하는 등 문제가 쌓여 있다. 여기에 농업인력의 재편을 포함한 농업 구조조정과 직불제 확대를 위한 재원마련 대책이 확보되지 않으면 후속협상은 문구에만 매달리다 실익을 챙기기 어려워진다.

경기도 평택에서 벼농사를 짓는 윤상연(43)씨는 "정부는 무조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하지 말고 농사를 계속 지어도 괜찮은지 아니면 누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판단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효준.정철근 기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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