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승리 인터뷰를 생각하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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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2국
[제14보 (172~182)]
黑 . 왕시 5단 白 . 이세돌 9단

흑▲의 팻감에 A로 받아주면 그만인데 이세돌 9단은 172로 따냈다. 유리한 쪽에서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변화'에 목말라 있던 왕시(王檄)는 노타임으로 173 밀고 들어갔다. 가만 있으면 지게 되어 있는 왕시로서는 변화가 선인지 악인지 따질 필요도 없다. 변화 그 자체가 행운이다.

이세돌은 174로 빵 따낸다. 172에서 한점, 이번에 4점, 모두 5점을 빵 따냈다. 기분 좋고 시원하다. 그러나 흑도 177로 넘어 죽었던 귀가 상당한 집을 내며 모조리 살아갔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나왔을까.

결과는 '백 손해'였다. 그 바람에 형세는 극도로 미세해졌다. 계가를 해 보던 이세돌 9단도 문득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172,174는 실수였던 것이다.

국후 이세돌 9단은 "이겼구나 싶어 끝나면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지요"라고 말했다. 솔직하기로 소문난 이세돌다운 얘기였다. 이 판을 이기면 우승이다. 처음엔 나빴으나 어언 판은 역전돼 지려야 질 수 없는 바둑이 됐다. 그래서 기자들의 인터뷰 때 승리 소감을 뭐라 할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의 느슨해진 집중력에다 빨리 끝장내고 싶은 심리상태가 기어이 사고를 만들었다.

이젠 반집승부라고 한다. 다행인 것은 비록 반집이라도 백이 두텁다는 것.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반집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절망 속에서 회생한 왕시가 181로 날카롭게 붙이며 힘을 내고 있다. 이세돌은 182의 최강수를 둔다. 턱 밑까지 쫓아온 상대를 밀어내듯 한 집이라도 더 챙기려고 한다. 그러나 이 수는 무리수였다. '참고도' 백1로 두어 참아야 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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