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2기 모델은 미국 중산층의 아버지 루스벨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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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가족이 22일 취임식이 열린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 들어서서 박수치고 있다. 오른쪽부터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큰딸 말리아, 작은딸 사샤. [워싱턴 AP=뉴시스]

미국 대통령선거의 막바지였던 지난해 11월 초 버락 오바마는 ‘시카고 선언’을 내놓았다. 그는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기회, 새로운 사회안전망을 위해 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2기 경제정책의 기본 원칙이다. 오바마 1기는 위기 수습의 시간이었다. 오바마는 2008년 위기로 작동을 멈춘 금융시스템을 되살려내고 추락하는 실물경제를 붙잡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처치는 끝났다. 이제 오바마 2기 행정부의 과제는 바로 미국 경제의 ‘힐링’이다. 경제의 심장인 중산층을 복원하는 일이다. 지금의 오바마가 76년 전인 1937년 집권 2기 취임식을 가진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32대 대통령, 1933~45 재임)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이유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해 루스벨트는 대공황 응급처치를 막 끝내고 2차 뉴딜을 시작했다”며 “한결 공격적으로 이뤄진 공공 투자 확대, 사회안전망과 노동권 강화 덕분에 중산층이 본격 형성돼 루스벨트가 ‘중산층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 중산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혁신·생산·소비를 이끌었다. 그들 덕분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전후 빠르게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확산이 저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미 중산층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워싱턴 퓨(Pew)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미 중산층은 전체 성인의 51%였다. 2000년 62%였던 게 10년 새 11%포인트나 줄어든 것이다. 퓨연구소는 “역사적 수준에 이른 가계부채와 살인적인 의료·교육비, 정체된 임금, 부실한 일자리 등이 바로 미 중산층을 위협하는 요인들”이라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내 눈에는 루스벨트 키즈(중산층)가 벼랑 끝에서 오바마의 구원을 갈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경제팀 인선으로 의지를 드러냈다. 차기 재무장관에 예산과 사회복지 통인 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명했다. 오바마는 루를 앞세워 중산층 복원에 나설 요량이다. 의료보장과 교육기회 확대 등 복지혜택도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에는 걸림돌이 있다. 미 경제정책연구소(EPI) 이코노미스트인 헤이디 셔어홀츠는 “오바마 정책이 가능하기 위해선 당장 부채한도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방정부 부채한도 증액으로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는 중산층 복원 은 시작도 어렵다. 민주당과 가까운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오바마가 추진할 경제정책을 감안할 때 부채한도가 2조2000억~2조8000억 달러 정도 증액돼야 한다”며 “미봉책으로 석 달 정도 부채한도를 늘려서는 뜻을 이루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이 “지난해 말 재정절벽 협상에서 너무 많이 양보했다”며 벼르고 있다. 이런 정치적 갈등이 루스벨트에겐 없었다. 당시 미 상·하원은 모두 민주당 수중에 있었다. 그럴수록 오바마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쓸 공산이 크다. 여론몰이로 공화당을 압박하는 정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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