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시옷」 많이 쓰는 서울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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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무심히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말하는 도중이라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말투로 보아 아마 서울구경 온 경상도 두메의 여학생들인 듯 싶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사와 흐뭇한 미소 그리고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높이 솟은「빌딩」, 화려한 「네온」상가에 진열된 눈부신 물건들, 여성들의 사치, 이러한 것들에 조금도 감탄하거나 부러워하거나 자신들의 위치를 초라하게 생각지 않고 오히려 농촌과 도회의 심한 차이를 지적하면서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우리 국민의 생활상태가 백화점「아케이트」에 진열된 화려한 물건을 가지고 살 수준이 어디 돼 있습니꺼, 아직도 농촌은 전기가 없는 지역이 많은데 서울이라고 저토록 많은 「네온」이 빛나야만 합니꺼, 돼지우리 같은 농가와 수도서울의「빌딩」은 너무 심한 대조 같심더』
그들은 웃으면서 이런 말까지 덧 붙였다.
『서울 사람들은 말씨가 고운 줄 알았는데 <쌍시옷>을 많이 씁디더…』
한창 분별 없이 허영에 들뜰 나이의 여학생이 어떻게 하면 온 국민이 균형 잡힌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슬기에 찬 그들의 대화가 내겐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김현수·31세·주부·서울성동구 금호동1가 1144 17통 2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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