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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 재래시장 … 품질로 버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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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일 오후 서울 논현동 영동시장 모습. 영동시장은 신선한 먹거리 재료와 저렴한 가격으로 강남의 유명 백화점 식품관과 경쟁하고 있다. [사진 강남구청]

“이렇게 인심 후하게 줘야 재래시장이지. 마트처럼 딱딱 100g씩 담아 주면 되겠어요?”

 좌판에 펼쳐놓은 멸치볶음을 비닐 봉지에 가득 담아 넣으며 ‘충남반찬’ 주인 박용자(60·여)씨가 말했다. 손님은 흡족한 얼굴이다. 주 2~3회 이곳을 찾는다는 권영은(27·여)씨는 “마트보다 값이 싼 데다 이렇게 덤을 얹어주는 게 시장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20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전통시장을 찾았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 양 옆으로 온갖 종류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야채·과일·수산물·반찬 가게, 여기에 정육점·떡집까지 없는 게 없다. 가게 앞 좌판에는 온갖 생선과 포장 안 된 두부, 소금·고추 등 형형색색의 식재료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모습이다.

 영동시장은 강남구에 유일하게 남은 ‘골목길’ 전통시장이다. 압구정동의 신사시장 등 강남구엔 몇몇 재래시장이 남아 있지만 이렇게 골목길에 옹기종기 붙은 시장은 이곳이 유일하다. 남북으로 250m, 동서로 100m인 골목길에 150여 개의 점포가 오밀조밀 얽혀 있다. 면적은 1만3100㎡다. 대형마트의 공격적인 경영을 이겨내지 못하고 44년 된 영등포구 대림시장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곳은 1975년 개장 이래 38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신세계백화점·롯데백화점 등 국내 최고 식품점을 갖춘 백화점이 연일 경쟁하는 틈에서 꿋꿋이 살아남았다는 점만으로도 영동시장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영동시장의 생존 비법은 무엇일까. 김청호 강남구 지역경제과장은 “영동시장은 품질 좋은 식재료로 먹거리에 까다로운 강남 주부를 만족시켰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특히 한우 품질이 좋아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곳에 자리 잡은 ‘N한우’와 ‘H한우전문점’ ‘S축산’에 가면 질 좋은 한우와 수입육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유명한 정육점 덕에 주변에 고깃집이 몰려들어 ‘고기골목’도 생겼다. 생선도 좋다. 매일 아침에 들여온 신선한 생선을 저렴하게 판매해 평소는 물론 명절에도 인기가 높다. ‘오뚜기수산’을 운영하는 임미화(53·여)씨는 “단골손님 위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냉동 수산물보단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생물을 많이 갖다 놓는다”고 말했다.

 방부제나 표백물질을 사용하지 않아 입소문을 타는 가게도 많다. 국수 면을 파는 ‘Y국수’와 옛날 방식으로 철 쟁반에 빵을 내어 파는 ‘B 빵집’이 대표적이다.

 가격이 싼 것도 장점이다. 잠원동에서 왔다는 한 주부는 “이곳에서 호박 한 개를 1000원 주고 샀는데 같은 날 마트에서는 2800원에 팔고 있더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곳은 2011년 배추 파동 때도 크게 가격 변동이 없었다”며 “4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시장 상인들의 네트워킹 덕분에 원산지에서 비싸지 않게 들여오는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도 마트의 공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상인들은 “농협이 시장 바로 앞에 축산물센터를 만들어 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최근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가에서 말만 앞세우지 말고 행동으로 중소 상인들을 보호해 달라”고 덧붙였다.

유성운·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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