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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에 끌려간 펑더화이 “총은 붓 역할 못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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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29면

1967년 7월 19일 펑더화이(가운데)가 베이징 항공학원에서 열린 비판대회에 끌려 나오고 있다. [사진 김명호]

1966년 7월 16일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창장(長江·揚子江)을 헤엄으로 횡단한 마오쩌둥이 한마디 했다. “거센 풍랑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인류사회는 거대한 풍랑 속에서 발전했다.” 뭔가 심상치 않을 징조였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05>

일주일 후 인민일보(人民日報)와 해방군보(解放軍報)에 똑같은 사론[社說]이 실렸다. “마오 주석과 함께 거센 풍랑 속으로 전진하자.”

문화혁명의 먹구름이 전 중국을 휘감았다. 적과 동지를 완전히 규정한 과격한 언사(言辭), 신념의 탈을 쓴 눈치 보기와 폭력이 난무했다. 별것도 아닌 몇십 년 전의 공과(功過)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사람들은 분열되고 당도 분열됐다. 홍위병도 마찬가지였다. 혈통 좋은 집안과 나쁜 집안 출신들로 패가 갈렸다. 충돌할 때마다 총질과 칼부림으로 유혈이 낭자했다. 출신성분이 나쁜 집안의 자녀들은 부모 고발에 앞장섰다. 이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죽음처럼 자연스러운 것도 없지만 억울하고 비정상적인 죽음들이 속출했다. 1959년 여름, 피서지 루산(廬山)에서 마오쩌둥의 야심작인 대약진운동을 비판하고 쓰촨(四川)으로 쫓겨난 전 국무원 부총리 겸 국방부장,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도 예외일 수 없었다.

마오쩌둥의 일흔세 번째 생일인 1966년 12월 26일, 쓰촨성 청두(成都)의 유서 깊은 골목을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온 홍위병들이 봉쇄했다. 잠시 후 세탁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두툼한 겨울옷을 걸친 노인 한 명이 끌려 나왔다. 28일 새벽, 베이징역에 도착한 홍위병들은 노인을 위수사령부에서 나온 군인들에게 인계했다.

경비가 삼엄한 군부대 막사 안으로 인도된 노인은 코트를 내동댕이쳤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눈부터 붙이자. 며칠간 한잠도 못 잤다”며 마룻바닥에 몸을 던졌다.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더니 이내 코를 골았다. 당당한 행동이 초라한 몰골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투덜거리며 코트를 집어 들자 毛澤東語錄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록을 집어 든 말단 지휘관은 표지를 넘기는 순간 움찔했다. “彭德懷” 붓으로 갈겨 쓴 책 주인의 이름이 선명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펑더화이는 열여덟 살 때 군문에 들어와 장정(長征)과 항일전쟁, 국·공전쟁을 거치며 33년간 전쟁터를 누빈, 전신(戰神)이나 다름없었다. 신중국 수립 후 한반도에서 세계 최강의 미군과 자웅을 겨뤘고, 7년 전까지만 해도 육·해·공 3군을 질타했던 10원수(元帥) 중 한 사람이었다.

해질 무렵, 중앙경위대 소속 군인과 쓰촨성에서 베이징까지 함께 온 홍위병들이 펑더화이 앞에 도열했다. “마지막 경례를 올립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나지막하게 훌쩍거리는 병사를 발견한 펑더화이는 왕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 걱정 말고 감기약이나 챙겨 먹어라.”

1967년 새해가 밝았다.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냈다. “주석께서는 제게 서부지역 건설(三線建設)을 명하셨습니다. 쓰촨에 가 있는 동안 부주임 한 명을 해직시킨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강물에 돌 던지기였다. 몇 달이 지나도 답신이 없었다.

살기(殺氣)등등한 문장들이 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펑더화이를 빗대서 비판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베이징 지질학원 홍위병 두목 왕다빈(王大賓·왕대빈)이 펑더화이를 닦달했다. 인민일보에 실린 글들을 내밀며 독후감을 쓰라고 윽박질렀다.

펑더화이의 대답은 명쾌했다. “흑백을 전도시키고도 남을 글이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글을 쓰고 안 쓰고는 내 자유다. 헌법에도 명기돼 있다. 나는 평생을 총과 함께했다. 붓은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총은 붓 역할을 못한다. 너 같은 수재들의 논쟁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염라대왕이 너를 기다린다”며 몽둥이찜질이 시작됐다. 코를 비틀고 볼따구니를 물어뜯는 여자홍위병도 있었다.

습기 찬 감옥에 갇힌 펑더화이는 질병에 시달렸다.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약은 고사하고 물 한 잔 얻어 마시기도 힘들었다. 갈아입을 옷도 주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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