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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FOCUS] 뻥 뚫린 북극 바닷길 … 러시아 자원 한국행 ‘초고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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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북극해 활용이 늘어가는 가운데 가즈프롬의 액화 석유를 실은 ‘오비 리버’호가 북극해를 지나고 있다. 11월 7일 노르웨이의 함메르페스트를 떠난 배는 18일까지 북극해를 항해한 뒤 일본의 토바항에 도착했으며, 아톰플르트사 소유의 쇄빙선(사진 오른쪽의 불 밝힌 배) 두 척의 인도를 받았다. 항해 당시 북극해의 서부는 많이 녹은 상태였으나 동부는 30㎝ 두께로 얼어 있었다. [사진 가즈프롬]

한국 연료수출업계가 유럽 시장에 도달하는 새로운 운송로를 모색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전통적 해상운송로에 비해 석유제품을 실은 유조선들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경우 선박당 약 50만 달러의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북극항로는 국제화물운송 지도상에서 아직은 완전히 새로운 운송 루트다. 소련 시절에는 사실상 외국 선박들의 접근이 봉쇄돼 있었으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는 러시아 국내 운송량조차 거의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2010년 대형 선박들을 위한 쇄빙선 에스코트가 재개돼 오늘날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화물 운송은 시범단계로 접어들었다.

북극항로를 경유하는 화물운송량은 점차 증가 추세다. 북극항로는 대서양 카라 해협에서 북극을 경유해 태평양 프로비데니야만(灣)에 이르는 총 5600㎞의 최단 운송로다. 북극항로의 해상무역 역사는 2009년 시작됐다. 당시 2척의 화물선이 총 64만3000t의 화물을 싣고 북극항로를 통과했다. 2010년엔 화물선 4척이 총 11만1000t의 화물을 실어날랐고, 2011년엔 화물선 34척이 총 82만t의 화물을, 2012년엔 10월 15일 현재 화물선 38척이 총 103만t의 화물을 수송했다. 러시아 교통부의 전망에 따르면 2020년까지 북극항로 경유 물동량은 6400만t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는 2011년 북극항로를 경유한 한국행 유조선도 3척이 포함돼 있다. 러시아 노바텍(Novatek)사로부터 수입한 가스콘덴세이트를 실은 배들이었다. 2012년에 한국 관련 운항은 수입 7회, 수출 3회 등 10건으로 늘어났다. 이번에도 한국의 수입 물품은 노바텍의 화물이었다. 노바텍사는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유리한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북극항로 이용 조정 비영리 조합’(2001년 설립)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노바텍은 7척의 유조선을 이용해 총 42만t의 가스콘덴세이트를 한국으로 수출했다. 이들 선박은 무르만스크~인천, 무르만스크~대산 구간을 운항하면서 일부 구간에서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의 호위를 받았다.

노바텍의 가스콘덴세이트 수입에 이어 2012년 한국은 북극항로를 이용한 수출을 개시했다. 여수 화학단지에서 생산된 항공유를 실은 유조선 3척이 여수항을 출발, 북극항로를 경유해 핀란드에 도착했다고 ‘북극항로 이용 조정 비영리 조합’의 블라디미르 미하일리첸코 회장은 밝혔다. 2012년 한국이 핀란드로 수출한 항공유는 총 19만8000t으로 유조선 1척당 6만6000t을 실었다. 공급가는 비밀이다.

포인트는 한국산 항공유를 동에서 서로, 러시아산 가스콘덴세이트를 서에서 동으로 수송하는 것이 노바텍의 물류시스템 속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항공유 수급에 애로를 겪는다고 할 수 없는 유럽에 한국 항공유를 수출한다는 독보적 프로젝트가 경제성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상선 운항은 모두 6월 말에 시작해 11월 말로 끝나는 여름~가을에 완료됐다. 러시아 국영원자력쇄빙선사 ‘로스아톰플로트’ 관계자는 “1978년부터 북극항로는 연중 내내 항해가 가능하지만 화물 수송 최적기는 일반적으로 7, 8월”이라며 “올해에는 사상 처음 개별 선박이 아니라 유조선 3, 4척으로 구성된 수송선단의 쇄빙선 에스코트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페트롤륨 아르구스의 분석가인 미하일 페르필로프는 “한국이 유럽 경쟁시장에 항공유를 공급하는 것은 그 자체론 사업타당성이 떨어지지만 왕복이중운송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타당한 사업이 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덧붙여 남북한을 연결하는 가스관 건설 계획이 아직도 구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북극항로를 이용한 시범 운송들은 향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좀 더 대규모의 가스 공급을 위한 길을 닦아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내년부터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이 한국에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개시한다는 점도 변수다. 가스프롬 마케팅 & 트레이딩 싱가포르와 한국가스공사가 체결한 계약에 따르면 2013~2014년 2년 동안 러시아는 한국에 100만t(연 유조선 8대)의 가스를 공급할 예정이다.

최근 화물선 ‘타르나흐’(왼쪽)와 ‘알틱 익스프레스’호가 북극지역의 딕슨 항을 떠나 북극해 항로로 진입하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북극항로의 길이는 1만5000㎞ 정도다. [포토 익스프레스]

러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009년부터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사할린-2’ 사업의 일환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수송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2010년 10월 가스프롬의 자회사 ‘가스프롬 마케팅앤트레이딩(GM&T)’이 그리스의 다이나가스로부터 용선한 LNG 수송선 ‘레카 오비’가 세계 최초로 북극항로 통과에 성공했다. 이는 상업용이 아닌 시범 운항이었다. 로스아톰플로트에 따르면 당시 ‘레카 오비’는 약 13만5000㎥의 LNG를 싣고 있었다. 니콜라이 고렐로프 GM&T 국제해상운송 및 물류국장에 따르면 당시 시범 운항의 목표 중 하나는 ‘LNG 국제무역을 위한 북극항로의 기술적·상업적 적합성 조사 및 자료 수집’이었다. 세르게이 쿠프리야노프 가스프롬 홍보실장이 RBTH에 밝힌 바에 따르면 가스프롬은 시범 운항에 만족했으며 북극항로 이용 가능성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전통적 루트는 평균 35~38일이 걸리는 반면, 북극항로는 약 3분의 1이 단축된 20~22일이면 된다.” ‘북극항로 이용 조정 비영리조합’의 블라디미르 미하일리첸코 회장은 험악한 풍랑으로 유명한 대서양과 해적들로 들끓는 아덴만을 대체할 수 있는 북극항로의 메리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해적을 피해 희망봉을 돌아오는 경우 시간은 45일로 늘어난다. 이에 비해 북극항로는 시간과 비용 절감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대안이다. 북극항로를 통과하려면 쇄빙선의 에스코트가 필수적이지만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비용과 견줄 때도 우위에 있으며 빙하지역 화물운송에 대한 고액의 보험료는 남방항로를 택했을 때 해적을 만날 리스크와 비교하면 수용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하일리첸코 회장은 또 “최근까지 북극 항로에 대한 접근을 힘들게 한 것은 얼어붙은 빙하가 아니라 값비싼 쇄빙선 에스코트 서비스였다”고 지적한다. 수에즈 운하 관리당국이 수년 동안 운하통과세를 화물 t당 5달러 수준에서 유지해 온 반면, 러시아 쇄빙선 이용료는 최근까지 t당 20~30달러에 육박했다. 2010년에야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당시 러시아 당국은 쇄빙선 이용료의 상한선을 규정함으로써 쇄빙선 이용 계약 체결 시 이용료를 인하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 결과 업계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평균 쇄빙선 이용료는 t당 4~5달러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러자 2011년 북극항로 물동량은 바로 5.5배 증가했다. “북극항로를 운항한 대형 화물선 15척의 운항 속도를 분석한 결과 기상조건과 선택 항로에 따라 최소 7일에서 최대 22일까지 단축됐다”고 미하일리첸코 회장은 말한다. 유조선 한 척의 하루 운항 비용은 4만~5만 달러이므로 북극항로를 택하는 경우 선박 1대당 평균 50만 달러의 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북극항로를 경유하는 화물의 대부분은 연료다. 컨설팅전문 ‘인베스트카페’사의 분석가 안드레이 셴크는 “앞으로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될 것이며, 무엇보다 석유·가스 무역국, 특히 LNG 수출국들의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컨테이너 화물, 그 밖에 석탄, 금속의 수송로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북극항로 활성화를 위해서는 1년 365일 상업적 항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 쇄빙선단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현재 러시아의 원자력 추진 쇄빙선 함대는 원자로 2기를 탑재한 7만5000마력급 쇄빙선 4척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야말’ ‘승전 50주년’과 원자로 1기를 탑재한 4만 마력급 하천용 쇄빙선 2척 ‘타이미르’ ‘바이가치’, 거룻배를 적재한 컨테이너선인 ‘타이미르’와 동급의 원자력 바지선 1척 ‘세브모르푸트’ 그리고 해상수리 기지 5곳으로 구성돼 있다. 원자력 쇄빙선단 규모에서 세계 최대다.

지난 11월 11일엔 신형 원자력 쇄빙선 제작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발틱 조선소는 신형 쇄빙선을 위한 금속 플라스마 절단 작업을 개시했다. 계약조건에 따르면 건조는 2017년 말 완료될 예정이다. 2009년 기술설계가 완료된 이 신형 원자력 쇄빙선은 크기와 힘에서 세계 최대급 쇄빙선이 될 전망이다. 새 쇄빙선에는 신형 일체형 원자로 RITM-200이 장착될 것으로 알려졌다.

신형 쇄빙선은 북극해상은 물론이고 시베리아 내륙 하천의 하구에서도 운항이 가능하며 3m 두께의 얼음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여기에 확장된 폭 덕분에 최대 배수량 7만t급 유조선을 신형 쇄빙선 한 척으로 북극해상에서 에스코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르크티카급 쇄빙선의 폭은 30m인데 신형은 34m다.

올가 세니나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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