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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해결해달라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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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가 이달 9일 미국 백악관 인터넷 청원 홈페이지인 ‘위 더 피플’에 올린 글. ‘(전원 정규직화에 대해)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위 더 피플(We the People)’ 캡처]

사내하청 근로자의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울산지회(지회장 박현제)가 이달 9일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공식 입장을 듣겠다며 백악관 인터넷 청원 홈페이지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글을 올린 뒤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당신의 입장을 표현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국내에서 일어난 노사 문제를 미국 행정부에 청원하겠다며 글을 올린 것이다.

 ‘위 더 피플’은 오바마 행정부가 시민의 정치 참여와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정책의견 게시판으로 네티즌 2만5000명 이상 동조 의사를 밝히면 미국 행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도록 돼 있는 곳이다. 하청노조가 이 글에 대한 동조 의사를 묻는 기한은 2월 8일까지로 13일 오후 5시10분 현재 동조 의사를 전한 네티즌은 84명이다. ‘위 더 피플’ 사이트는 미국 내 우편번호인 ‘ZIP 번호’만 입력하고 이름만 쓰면 간단히 글을 올릴 수 있으며 게시자가 미국 시민인지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는 없다.

 노조는 미국 정부가 입장을 밝혀준다면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릴 것으로 판단해 글을 올렸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노조 간부는 “미국 정부가 우리 입장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 준다면 (한국) 정부와 법원에 더 힘 있게 정규직화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의 설명대로 해당 게시물이 2만5000명의 서명을 받더라도 오바마 행정부가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해당 사이트가 “연방 정부의 현행 정책 또는 잠재적 정책 및 행동과 관련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청원을 개설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문을 연 위 더 피플에는 지난해 말까지 9만4000건의 청원이 올랐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런 청원에 대해서는 2만5000명이 동조해도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국내 노사 문제를 다른 나라에 묻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입장을 보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견, 도급에 대한 규제가 없고 노동법 체계가 전혀 다른 미국에 이 같은 입장을 듣겠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답변을 내놓을 리도 없지만 설령 나온다 하더라도 국내법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가 인권 문제도 아닌 개별적인 노동 문제를 미국에 묻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사측은 “ 우리 회사 및 제품의 대외적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행위임에 틀림없다”고 밝혔다.

울산=김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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