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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카 女배우' 요실금 속옷 광고를…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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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세상에나….” TV를 보던 아내가 놀라움 섞인 탄식을 토해낸다. 케이블 방송 광고시간대였다. 한 중년 미인이 요실금 팬티 광고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1970년대를 주름잡던 트로이카 여배우 중 한 명인 A씨. 그녀가 기능성 속옷을 선전한다고 특이하게 볼 일은 아니지만 제품 자체가 노년기를 상징하는 것이라 아내도 놀랐던 것 같다. 그동안 60대 후반 여배우 B씨가 나오는 광고에 익숙해졌는데, A씨는 B씨보다 열한 살이나 아래다. 세월은 그렇게 흐른다.

 그러나 만일 TV 속 A씨가 시청자의 탄식을 들었다면 거꾸로 되물을 법도 하다. “너희는 나이 안 먹니?”라고. 70년대를 풍미한 하이틴 영화의 히로인은 누가 뭐래도 임예진씨였다. 이덕화씨와 열연한 ‘진짜 진짜 좋아해’ 시리즈는 당대 중·고교생들로 문전성시였다. 교복 안주머니에 임예진씨 사진을 품고 다니는 남학생도 많았다. 그런 임예진씨가 어느 즈음 이모로 나오더니 요즘 JTBC 인기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선 여우 같은 며느리와 신경전을 벌이는 시어머니 역할이 딱 맞춤이다. 올해 임씨는 만 53세, 이덕화씨는 61세.

 지난 일요일 밤 KBS TV의 ‘콘서트 7080’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샌드페블즈의 히트곡 ‘나 어떡해’를 오랜만에 접한 것은 참 좋았는데 연주하는 멤버들이,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하나같이 중늙은이로 변해 있었다. 목소리가 인체 중 가장 나이를 덜 탄다니 그나마 가수들은 행복한 편이지만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2009년 ‘황성옛터’의 이애리수씨가 99세로 별세한 것을 마지막으로 1세대 대중가요 가수는 모두 세상을 떴고 80대 원로도 몇 분 남지 않았다. 최희준(77)·남일해(75)·이미자(72)씨가 이미 70대이고, ‘대머리 총각’의 김상희씨도 올해 만 70세가 됐다.

 너무나 당연한데 왜 놀랍고 억울하고 부당(!)한 것일까. 누구나 자기 위주로 나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말마다 방영되는 ‘나홀로 집에’에서 귀여운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매컬리 컬킨(32)이 마약에 절어 산다는 외신을 보고 마음이 스산해지는 것은 언제까지나 아이였으면 하는 헛된 바람 탓일 게다. 어린 나이에 감옥에서 순사(殉死)하신 유관순 열사 말고는 누구도 영원히 ‘누나’로 남을 수 없다.

 대선 후 나돌던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론 같은 것을 보며 다들 자기 나이에서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복지에 무게를 두는 새 정부에선 혜택을 둘러싼 세대 간 충돌이 한층 복잡해질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라면 갈등이 한결 줄지 않을까. 20, 30대라 해도 집에는 50, 60대 부모가 있지 않은가. 김태희·문근영이 요실금 속옷 광고에 등장해도 놀랍지 않은 날이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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