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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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노동행정의 주무부서인 노동부와의 갈등이 노출되는 등 새 정부의 노동정책의 방향이 주요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함께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발전을 해왔다. 법적으로는 현재 노정간에 교섭이 진행 중인 공무원을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수준에 걸맞은 노동권이 보장되게 됐다.

노조원 수나 노조 조직률은 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으나 대부분의 주요 제조업 대기업이 조직화 돼 있으므로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하에서 노동운동이 우리나라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다.

노사문제가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들이 경영상의 가장 큰 애로요인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는 것에도 나타나듯이 그 책임의 소재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20여년 가까운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안정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 정부나 재계의 경제정책이나 경영정책은 노동참여적이기보다는 노동배제적이었기 때문이다.

*** 외국 기업들의 애로요인

현 정부에 들어서 노사정위원회가 설립돼 운영되는 등 노동계를 주요 국가정책 결정과정에 참여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진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현장에서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민주노총 계열의 노조는 참여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도 경영진들은 노조의 경영참가 요구에 대해서 상당한 거부감을 보여왔고 노동조합도 경영에 참가할 역량과 자세가 부족하므로 노사관계가 참여적이고 상호 호혜적이 되기보다는 대립적이고 소모적이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보다 노동참여적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보다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노동계 인사들의 참여가 늘어날 전망이다.

제도권 밖에서 현장에서의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하던 이들 인사의 정책결정에의 참여는 지금까지의 노정 및 노사갈등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장 장악력 측면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노동계 인사들의 목소리나 견해가 정부 정책으로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혁신적 노동운동권이 그 힘이나 위치에 걸맞은 책임의식이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재계의 기본적인 시각인 듯하다.

비정규직의 보호를 둘러싼 인수위원회와 노동부간의 갈등을 보면서 재계의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로 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OECD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호에 대한 정부 규제는 OECD 회원국 27개국 중 두번째로 높다. 계약직 활용의 용이성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규제 순위는 OECD 국가 중 중간 정도다.

경제특구에서 파견근로 허용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지만 파견근로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현재 26개 직종에 한해 허용하고 파견근로의 기간을 최대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규제가 강한 편에 속한다.

*** 비정규직 규제 완화가 추세

인수위원회의 일부 위원 주장대로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해준다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유연성 측면에서 OECD 국가 중 가장 경직적이 될 것이다.

90년대 들어 OECD 국가들이 오히려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인 것을 고려하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강제하는 것은 국제화되고 개방화된 세계화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이다.

盧당선자의 향후 노동정책 방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예상되는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혁신적 노동운동의 주도세력이 지금까지의 노동계 편향적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국가 전체의 입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뀔 때 재계의 향후 노동정책에 대한 우려도 불식되고 국민들이 기대하는 노사관계의 구조적인 안정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朴英凡 한성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