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건축계 ‘감리 논쟁’ 불황의 그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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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집을 짓는다. 건축가가 설계를 하고, 시공사가 공사를 맡는다. 감리(監理)란 이 과정에서 건축물이 설계의 취지에 맞게 지어지고 있는지 감독하는 과정을 말한다. 소규모 건축물의 경우 통상 이를 설계한 건축가가 감리를 맡아 정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하며 감독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연면적 2000(약 605평) 이하 건물에 대해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법안이 발의돼 건축계가 시끄럽다.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건축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소규모 건축물의 경우 허가권자(구청 등)가 설계자가 아닌 건축사를 공사감리자로 지정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유는 “동일한 건축사에 의해 건축물이 설계되고 감리가 이뤄지는 결과, 부실이 은폐되는 등 실질적인 감리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일견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법안이 나온 배경에는 건축계의 극심한 불황이 자리잡고 있다.

 법안을 제안한 단체는 대한건축사협회다. 현재 건축사 자격증을 소지한 1만 7000여 명 가운데 실제 활동하는 이는 1만 2000여 명. 문제는 건설경기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대다수가 일거리를 찾지 못해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협회 관계자는 “서울 건축사의 약 70%가 지난해 설계계약을 1건도 수주하지 못했을 정도다. 지방은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면 일이 없는 건축사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젊은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반대가 거세다. 이들은 현재도 준공 시 타 건축사가 특별검사원 자격으로 나와 건물을 검사하는 제도 등이 있어 부실이 은폐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건축물이 나오기 위해선 설계자가 완성까지의 모든 과정을 감독·책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감리비 수익 감소에 대한 계산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우려되는 건 건축주의 손해다. 설계와 감리가 통합되든 분리되든,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축물이 나왔을 때 가장 고통 받는 것은 건축주다. 특히 새 법안에서 감리자를 건축주가 아닌 허가권자가 지정하도록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건축주 없이는 건축가도 없다. 건축계가 자신들의 고객인 건축주를 고려해 지혜로운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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