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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 소외된 인간 … 흑과 백이면 충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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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카뮈

지난해 우리 학계에선 ‘피로사회’라는 말이 회자했다. 모든 게 불안한 세상, 그 안에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피로’를 은유한 용어다. 시간·공간을 떠나 고단한 게 삶이라지만 그런 묵중한 삶에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을 드러낸 작가로 알베르 카뮈(1913~60)만한 이가 있을까.

 흔히 ‘부조리 문학’의 대명사로 불리는 카뮈가 올해 탄생 100년을 맞는다. 카뮈 탄생 100돌을 기념해 그를 세상에 알린 『이방인』이 일러스트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가 특별 에디션으로 출간한 『일러스트 이방인』을 카뮈 전집을 출간한 책세상이 번역해 내놨다.

 『이방인』은 인간의 실존적 고민과 소외를 생경한 방식으로 그려낸 20세기의 클래식. 카뮈가 구현한 부조리의 세계가 그래픽 노블의 거장 호세 무뇨스의 손을 거쳐 흑백의 일러스트로 살아났다.

『일러스트 이방인』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요양원을 찾아간 뫼르소가 바다의 풍광을 바라보며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에 얼마나 즐거울까”라고 생각하는 장면. [일러스트 호세 무뇨스]

 무뇨스는 “작열하는 태양과 소외된 인간인 뫼르소를 형상화하는 데는 오로지 흑과 백이라는 두 가지 색깔만이 필요하다”고 했다. 숨막히는 부조리로 가득한 소설 속 현실은 흑백의 대비로 재현됐다. 권총을 겨누는 뫼르소의 모습과 모자이크로 처리된 그의 손은 강렬하다. 무뇨스가 우리에 안긴 최고의 선물은 ‘늙은 카뮈’의 모습. 만약 생존했다면 100세를 맞았을 카뮈가 우리 앞에 걸어 나오는 느낌이다.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 신화』 ‘부조리 3부작’으로 유명한 카뮈는 20세기 현대문학의 정점에 서 있는 작가다. 카뮈 전집을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사람은 늙어 사라져도 카뮈의 작품은 조금도 늙지 않았다. 『이방인』은 오늘날에 새로이 떠오르는 그 어느 소설 못지 않게 젊다. 의미가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우리 시대에 최고의 부조리한 고전”이라고 말했다.

 카뮈가 29세이던 1942년 출간한 『이방인』은 그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다. 1·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유럽에 『이방인』은 현실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했다.

 어머니의 죽음에 지나치게 담담하고, 살인을 저지른 뒤 반성하지 않는 뫼르소를 주인공으로 한 카뮈의 『이방인』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서사 형식과 인물·문체 등 모든 면이 파격적이었다.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가 『이방인』 출간을 “건전지의 발명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김화영 교수는 “『이방인』의 문체는 비유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가장 단순하고 분명한 ‘백색의 문체’다. 문체가 짧고 간결해 마치 냉동된 상태에서 바로 끄집어낸 것처럼 늘 날 것 같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사형 집행을 앞둔 뫼르소의 심정을 묘사한 책의 마지막 대목.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현실의 철저한 부정을 통해 얻어낸 행복, 섬뜩하다. 그런데 그게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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