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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 女論

장덕조의 신년소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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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 교수

“나 자신-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생각하고 인간으로서의 아이들을 생각할 때 어느 때가 되어야 완성될, 아니 조금이라도 완성에 가까워질까 하는 괴로움이 치밀며 기가 탁 막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통일할 수 없는 괴로움, 그것은 새해 첫날 아침이면 가장 크게 느끼는 걱정거리입니다.”(장덕조, ‘자취-신년소감’, ‘여성’, 1937.1)

 장덕조(張德祚·1914~2003)는 경북 경산 출신이며 1930년대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이자 기자였다. 이화여전 영문과를 중퇴한 뒤 1932년 ‘개벽’사에 입사해 기자이자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30년대에도 거의 모든 신문·잡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다른 여성 작가들보다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던 작가이며 한국전쟁기에는 기자이자 종군작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녀의 왕성한 창작열은 나이가 들어서도 식을 줄 몰랐다. 장덕조는 200여 편의 장·단편소설, 수필, 라디오 극본 등을 남겼다. 그리고 14권에 이르는 장편 역사소설 『고려왕조 5백년』을 출간한 것이 그의 나이 75세 때였다.

 이처럼 평생을 쉼 없이 문인으로 살았던 장덕조가 젊은 날에 쓴 ‘신년소감’의 한 대목이 위의 글이다. 그녀는 한 살의 나이를 더 먹게 된다는 것은 ‘인격의 완성’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에 그녀는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괴로움과 먹먹함을 느꼈다.

 우리의 2012년도 무척이나 다사다난했다. 우리 개개인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럴 테지만 한국 사회로서도 여러모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한 해였다. 이 격변의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오늘, 우리들의 마음속에 드는 가장 큰 감정은 무엇인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절망과 패배감에 휩싸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감정이 고통과 슬픔 쪽에 더 가깝다면 장덕조가 위의 글에 이어 덧붙인 아래와 같은 말을 새겨보자. 그리하여 2013년, 다시 꿈과 희망을 품으며 시작해보자.

 “내가 경험한 바 과거 여러 시기의 괴로움과 슬픔들이 역시 한 가지 새로운 무엇을 낳으려던 과도기의 진통이 되어주었던 것을 생각하고 오늘도 힘 있게 희망을 저는 봅니다. 꿈! 누가 이 희망을 하잘것없는 공상이라 비웃고 있습니까. 내가 완성한 인간이 될 수 없다면 다음 시절 사람이, 그도 할 수 없다면 그 다음 사람이 실현해 줄 꿈의 토대가 되면 그저 만족하렵니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