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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 194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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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풀을 뜯어 먹다 죽은 어린 소녀의 시신, 길가에 널브러진 시체를 뜯어먹는 개, 쌀 한 줌에 몸을 팔아야 하는 여인의 울부짖음…. 중국 펑사오강(馮小剛) 감독의 영화 ‘一九四二(1942)’의 장면들이다. 1942년 발생한 허난(河南)성 대기근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2012년의 끝자락, 중국 지식인들은 1942년이라는 과거 굴레에 빠져 고민하고 있다.

 영화 상영 한 달, 중국 신문과 방송은 대기근의 진실을 쏟아내고 있다. 당시 허난성은 1년 이상 지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전체 인구 3000만 명 중 3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1000만 명은 유랑을 떠나야 했다. 가뭄으로 인한 천재(天災)였다지만, 사건을 키운 것은 인재였다. 국민당 관리들의 사건 축소 및 은폐, 금융권의 정부 지원금 갈취, 언론 탄압, 인민의 피를 빨던 친일파의 행각 등이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기근 논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공산당 집권기인 1958년부터 시작돼 62까지 이어진 ‘1962년 대기근’이 그것이다. 194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사였다. 160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게 정부 공식 발표지만,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3000만 명을 훨씬 초과할 것으로 분석한다. ‘인육을 거래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전해질 정도다.

 1942년과는 달리 1962년 대기근은 인재의 요소가 컸다. 일본군의 침략도 없었고 가뭄도 심각하지 않았다. 정부 창고에는 곡식이 쌓여 있었고, 식량을 수출하기까지 했다. 인민일보 등 기관지는 ‘올해도 풍년’이라며 마오쩌둥(毛澤東)이 추진하던 대약진운동의 성과를 늘어놓았다. 그 사이 30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어야 했던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50년 전 내 할아버지·할머니가 굶어 죽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냐’고 공산당에 묻고 있다. 그러나 당은 말이 없다. 진실을 폭로한 서적은 여전히 출판 금지 목록에 올라 있고,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백서 한 권 없다. 지식인들은 기근의 이유를 안다. 무리한 공업화 추진, 관리들의 농업 생산량 허위보고, 농지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 후커우(戶口)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당의 솔직한 반성인 것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취임 이후 높아지고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많은 지식인은 ‘2013년을 정치민주화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장첸판(張千帆) 베이징대 교수 등 지식인 71명이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한을 공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 총서기 취임 이후 세 번째 공개 서한이다. 내년 시작될 시진핑 시기의 중국 정치가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영화 ‘1942’는 이 흐름을 보여주는 문화 코드였던 셈이다. 2013년의 문턱에 선 중국 지식인들은 지금 치열하게 ‘아듀! 1942’를 외치고 있다. 새 정치에 대한 갈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