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스러울 것 같다고요? 사치 대신 문화·감성 나누죠

중앙일보

입력 2012.12.27 03:10

업데이트 2012.12.2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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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린 연회장, 고급 샴페인,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핑거푸드, 수백만원 대의 경품, 고가의 이브닝 드레스와 수트 ….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본 VVIP들의 파티는 사람도 장소도 화려함 그 자체다. 실제로 그들의 파티는 어떤 모습일까. 상류층의 프라이빗 파티를 기획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수 정예의 선택된 인원만 참석해 고급 문화와 감성을 나누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고 말한다. 파티플래너들을 따라가 그들만의 파티를 엿봤다.

글=하현정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촬영 협조=뱅가·써니플랜

파티 플래너 최선희(왼쪽)·정현서 대표가 신사동 와인바 뱅가에서 VVIP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내 연회장이나 벤츠타워에 있는 연회장은 인근 지역에 사는 기업 CEO들이나 유명인사들의 파티가 주로 열린다. 청담동의 유명 레스토랑 역시 프라이빗 파티를 위한 대관 예약이 연말까지 빼곡하다. “부자들의 파티라고 하면 화려한 것만 생각하는데,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죠. 예전엔 호텔 연회장에서 많이 했지만 지금은 참석자들이 오기 편리한 장소에서 주로 열려요.” 파티플래닝 회사 ‘써니플랜’ 최선희(42) 대표의 말이다.

몇 년 전만해도 호텔 연회장이나 유명 클럽에서 100~200명씩 모여서 즐기는 대규모 파티가 유행했다. 하지만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들은 이제 불특정 다수가 참석하는 파티에는 가지 않는다. 30~50명 사이 소규모로 경제·문화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선호한다.

수준 비슷한 사람 중 비지니스 파트너 찾아

기발한 아이디어와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이 흐르고 편안한 인테리어 공간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말한다. 파티 플래너이자 마케팅 회사 제이앤피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인 정현서(41)씨는 “VVIP 파티는 훌륭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이라고 말하며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보다는 누구를 만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웰빙 식재료로 만든 고급 핑거푸드는 대부분 남는다.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기 때문에 배불리 먹는 사람이 없다. 샴페인 한잔 가볍게 들고 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인 것이다.

초대장에 참석자 리스트를 사전 공지하기도 한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 리스트에 있다면 그에 대한 정보를 미리 체크해둔다. 상대의 취미나 직업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클래식·오페라는 기본이고 패션·영화·디자인 등 트렌디한 주제 중에서 파티의 테마가 선택된다. 클래스 형식이 될 경우 해당 분야 전문가가 참석해 진행한다. 주제에 맞춰 미리 공부를 해 가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 남부 와이너리’에 대한 테마로 파티를 연다면 프로방스 지역의 특징과 와인, 와인 농가에 대해 알아둔다. 자신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풍부한 사람인지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VVIP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파티를 통해서 사람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와 비슷한 사회·경제적 수준에 있는 사람 중에서 문화 코드가 잘 맞고 업무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파티에서 참석하는 목적인 거죠. 실제로 파티를 통해 만들어진 인연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VVIP를 위한 파티는 중국·홍콩 등 해외에서 진행되기도 한다. 기업은 이들에게 항공권과 숙박을 제공하고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의 연회를 연다. 수백 만원의 명품 핸드백과 여행권이 경품으로 등장한다. 2박3일 또는 3박4일 일정에 드는 1인당 비용은 300~400만원선. 서울에서 열리는 일상적인 파티에 비해 여행과 파티가 결합된 형식은 친분을 쌓기가 훨씬 자연스러워 호응이 좋은 편이다. 이런 경우에는 VVIP 중에서도 상위 레벨 사람들만 극소수 참여한다는 점에서 참석자들이 더 큰 매리트를 느낀다.

문화·예술 매개로 자연스럽게 대화

백화점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연간 구매실적이 대략 5000만~1억원 이상, 상위 랭크 100명 이내의 고객들은 VVIP로 분류된다. 백화점 전 매출의 20% 이상을 올리는 사람들인 만큼 특별한 대우와 관리는 필수다. 최 대표는 “백화점 VVIP 파티는 늘 새로운 드레스 코드가 강조된다”며 “여성들끼리의 모임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돋보여야 한다는 심리가 있어서 드레스코드에 맞춰 명품 의류나 백, 주얼리를 구입하는 참석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백화점 측은 파티를 통해 또 다른 매출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열린 강남의 한 백화점 VVIP 파티의 컨셉트는 ‘레드 카펫’이었다. 초대장에 ‘베스트드레서를 뽑는다’는 내용도 표기했다.

‘과연 제대로 스타일링을 하고 올까’하는 주최측의 염려가 기우였다는 걸 증명하듯, 40대 이상 주부가 대부분인 VVIP들은 명품 브랜드의 이브닝 드레스에 완벽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났다. 참석자들은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며 서로의 의상과 스타일링에 대해 자연스럽게 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헐리우드 배우들의 시상식룩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연초 가족들과 떠날 휴양 여행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행운권 추첨을 통해서는 500만원 상당의 명품백과 고급 주얼리, 휴양 리조트 여행권이 상품으로 제공됐다. 참석자 전원에게는 와인과 향초 세트가 증정됐다. 협찬을 제외한 백화점측의 행사 진행 비용은 참석자 1인당 30만원 선이었다.

한 시중은행 PB센터에서는 고객 중 도곡동 타워팰리스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오페라와 와인이 함께하는 파티’를 열었다. 유명 오페라 작품인데다 연말이라 티켓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1매에 20만원인 VVIP석 티켓 2매를 집으로 발송했다. 공연이 끝난 후 인근 고급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해 와인 파티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관람한 오페라 작품을 화젯거리로 삼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냈다. 같은 곳에 살면서 문화 공연을 즐긴다는 공통점을 통해 훨씬 더 친밀한 관계 형성이 가능했다.

미술품 경매·바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난 해 열린 한 대형병원 주최의 VVIP 파티에서는 미술품 경매가 진행됐다. 판매 수익금은 복지 재단을 통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됐다. 전문 경매사의 진행으로 국내 중견 작가의 작품 20여 점이 소개됐고 작품들은 100~500만원 선으로 손쉽게 낙찰됐다. 행사를 기획했던 정 대표는 “연말 파티는 자선 형식을 빌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얘기에 참석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리면서 분위기가 훈훈해진다”고 전했다. 경매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자연스럽게 해외 아트페어, 국내외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바자를 겸한 파티를 통해 기부 행사를 하기도 한다. 유명인사와 명사들의 소장품을 기증하고 참석자들이 제품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기준 가격과 상관없이 고액을 투척해 총 기부 금액을 높여주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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