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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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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직
변호사

유명한 절이나 유원지 등에 가게 되면 종종 불편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식당에서 나온 사람이 거의 팔을 끌다시피 하면서 자신의 식당으로 들어가기를 강권하기 때문이다. 소심한 성격 탓으로 평소 남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이럴 때엔 마음이 참으로 불편하다. 선뜻 들어가기도 그렇고, 매몰차게 뿌리치지도 못해 고개를 숙이고 빨리 벗어나기 위해 종종걸음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다 같이 호객행위를 안 하면 그들도 덜 고생이 되어 편할 텐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손해를 보니까, 아니 불안하니까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르고, 지나가는 사람의 팔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물론 있다. 다 함께 안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나는 안 하려고 하지만 남들이 하는데 나만 안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옆의 식당을 믿을 수가 없다. 그들도 나처럼 안 하면 좋으련만 과연 그럴까. 법으로 강제하거나, 호객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자율적 결의’를 하면 될 터인데 과연 이러한 강제나 ‘자율’이 가능할까.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이 호객행위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요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사교육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남들이 안 하면 나도 안 할 것인데 남들이 하니까. 또한 남들이 안 할 때 나만 하면 성적이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전두환 대통령 때처럼 ‘무식하게’ 사교육을 금지하지 않는 이상 나도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서로의 선의를 믿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떤 행위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모두에게 안 좋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학문적으로는 죄수의 덫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호객행위나 사교육이 엄밀한 의미에서 과연 죄수의 덫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남들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경우는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법률적, 제도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고 ‘자율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의 선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빠져드는 것이 죄수의 덫이라면 ‘자율적인 방법’이라는 것 그 자체가 모순이 아닌가. 결국 법률적, 제도적인 방법으로 남들의 선의를 강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그물망으로 얽혀 있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하나의 잣대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한 예로 어느 교육부 장관이 교육 문제는 워낙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권한을 가진 장관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 개개인으로서는 절망하면서 스스로 덫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무척 괴롭다. 그야말로 ‘당국의 협조’도 구할 수 없고, ‘믿을 놈’ 하나 없고, 따라서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빠져들 수밖에 없으니까. 각자가 알아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각자도생의 길만 앞에 놓여 있으니까.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이런 것인가.

 책을 보면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국가나 제도, 그리고 계약 등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도 본 바와 같이 온갖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과연 국가 등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을 보면 그저 절망할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계기라도 만들어 거기에 희망을 걸고, 불안과 걱정을 덜어 왔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되니까, 또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까 등을 이유로 혹시라도 하는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을까. 우스운 말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비록 지나고 나면 헛된 것으로 판명될지라도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아닌가.

이영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