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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교차로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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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갑생
JTBC 사회1부장

회전교차로란 게 있다. 요즘 서울 시내 이면도로에서 종종 보게 된다. 중앙에 원형구조물을 만들어놓고 진입로를 곡선으로 만들었다. 신호등은 따로 없다. 운전자들이 다른 차량의 움직임을 살펴가며 알아서 진입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종전에 신호등 설치 지역들이 회전 교차로로 제법 바뀌고 있다. 서울·부산·울산 같은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들에도 잇따라 도입 중이다.

 회전교차로는 1970년대 초 영국에서 등장했다. 앞서 미국에서 개발됐던 로터리(Rotary)의 설계와 운영방식을 바꿔 단점을 보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름도 회전교차로(Roundabout)로 바꿨다. 현재 유럽은 물론 호주·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설치되고 있다. 대부분 소규모 도로에 적용하지만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광장처럼 대형으로 조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얼핏 회전교차로는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보다 많이 위험해 보인다. 특히나 국내 운전자들에게는 신호 없이 알아서 진출입하는 구조가 많이 낯설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신호를 받아서 움직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려대로 회전교차로에서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할까.

 부산을 예로 들어보자. 부산은 2010년 시범사업 대상지 4곳을 골라 회전교차로를 만들었다. 올해 초에 설치 전후 사고건수를 비교했더니 평균 33.3%가 감소했다. 부상자는 60% 넘게 줄었다. 그래서 부산에선 이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선 회전교차로를 설치한 지역에서 중상자 발생사고가 79%나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불필요한 신호지체가 줄어 소통이 더 원활해진 효과도 있다고 한다.

 회전교차로에서 사고가 급감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정해져 있는 통행규칙이 한몫한다. 회전 중인 차량에 주행우선권이 있다. 진입하려는 자동차는 일단정지를 한 뒤 교차로에 들어가야 한다. 차량 뒤엉킴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하지만 회전교차로의 근간은 무엇보다 관심과 배려다. 회전교차로에 진입하려면 좋든 싫든 다른 차량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회전 중인지, 진입하려 하는지 잘 보고 내 차를 움직여야 한다. 급한 차량이 있으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양보하는 배려도 중요하다. 만약 이 근간을 잊어버리고 운전자들이 서로 먼저 가려고 다투다가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우리 삶도, 정치도 마찬가지일 게다. 규칙이 필요하고 법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 특히 정치에선 비(非)지지층도 배려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러면 회전교차로처럼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을 잊는 순간 서로 뒤엉킨 교차로처럼 엉망이 된다. 새해에는 일부러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를 해보자. 그러면 두루 편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