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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 마지막 교훈-각 대학총장의 졸업식 훈시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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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총장은 졸업식 때마다 훈사를 한다. 「지식의 부대」를 사회에 내보내며, 그들에게 주는 경세 훈이다. 「감개무량」만은 아닐 것이다. 최고의 슬기를 베푼자는 또한 최고의 기대와 희망을 그들에게 건다. 거친 사회에 허허로이 그들을 내보내는 착잡함. 그럴수록 더해지는 근엄하고 숙연한 사명감, 대학의 본연에 대한 반성과 이상의 추구. 졸업 훈사의 심연한 의미는 오히려 모든 지성인에게 주는 진지한 각서이기도하다. 66년도 대학졸업식에서 행해진 대학총장들의 훈사에서 중요한 맥락을 살펴본다.
어느해의 졸업식 때와는 달리 총장들은 대학의 곤혹을 토로하고 있다. 은근한 강의시간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총성들, 체류탄·철조망의 살벌한 풍경, 그리고 「캠퍼스」를 징징 울려주던 「스피커」의 절규, 그 소란한 음향들…. 그래서 「캠퍼스」의 문이 닫힌 것은 몇 날이며 가방을 들고 교문을 들어섰던 일은 또 몇 차례였는지….
『암흑과 혼란이 엇갈리는 현실』 (서울대 유기천 총장), 『유례없는 모진 혼란과 거센 풍파 속의 비참한 현실』 (성균관대 이정규 총장), 어쩌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수난의 해』(연세대 박대선 총장)였는지도 모르는 지난해의 우울한 기억을 총장들은 한결같이 되새기고 있다. 그것의 극복을 자축하는 감개이기도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감개는 학부형들에게도 있다. 각고의 빈공을 견디며 오늘의 계관을 씌워주는 감회. 총장들은 그것에 경의를 표한다. 『오늘날의 영광을 가져오기까지에는 부형· 모자· 가족· 친척·기타 여러분의 눈물어린 정신과 물질적인 도움이 적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잠시 머리를 숙이는』 (숙대 윤태림 총장) 일은 감상마저 끌어들이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례적인 졸업사는 고대총장 이종우박사의 경우이다. 그는 울적한 심경으로 지나간 역사에 대한 회한 속에서 오늘을 개탄한다. 『경제생활의 궁색과 구습구악으로 인하여 공사를 혼동하며 중상모략으로 출세의 방편을 삼으며 목전의 소리를 얻기 위하여 국가·민족을 좀먹게 함은 일대 한 심사가 아닐 수 없읍니다』 이 총장은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으되 항산이 없고도 항심을 가지는 것은 다만 선비뿐이다』는 고인의 교훈을 인상적으로 인용하고있다.
『첫째는 믿음을 가집시다. 둘째는 사랑합시다. 세째는 소망을 가집시다』이대 김옥길 총장은 낭랑한 음성으로, 그러나 단조롭게 이렇게 말한다. 설교를 하듯, 사실 성경의 긴 인용을 끝으로 그는 평온한 훈사를 준비하고있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로세」1장9절부터 12절까지. 비장한 무엇도, 진지한 교훈도 이렇게 함축하고 말았다.
「학위」에 대한 진지한 반성도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볼 수 있었다. 『4년 혹은 6년간 많은 투자를 해서 대학은 졸업했지만 아무데도 써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범람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학졸업장만 얻었지 무엇을 시켜보려면 노력이 부족하여 쓸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어느 사회에서나 잘 준비된 실력있는 사람이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사방에서 그 사람을 빼앗아가려는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연세대 박대선 총장)
총장들마다 마지막충고는 특색을 이룬다.
ⓛ학사· 석사· 박사 등 학위는 엄격히 말하면 그 내용에 있어서 완전무결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한다.
②대망을 품고 빛나는 장래를 설계해주길 바란다.(서울대 유기천 총장)
첫째 인생의 설계는 반세기 앞을 전망하면서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웅대한 청사진을 그려보라.
둘째 사람의 가치기준을 올바로 인식하라.
세째는 협동정신을 발휘하라. (성대 이정규 총장) 이 총장은 『대기는 만성이라는 말도 있듯이 출세가 빨랐다고 해서 뽐낼 것도 없지만 출세가 좀 늦다고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비관하지 말라』는 충고도 곁들인다.
고대 총장 이종우 박사의 5가지 「항심명심」도 경세적이다.
『①현실에서 앞을 내다보고 항위하는 혹은 일하는 사람이 될 것이요, 결코 현실밖에 서서 모든 것을 냉평하는 현실 도피자, 현실방관자가 되어서는안 된다는 것입니다.
②따라서 추상적 가치주의 혹은 당위주의적 현실비관론 내지 사회비관론을 지양하고 항상 행위적 주체를 되찾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③자고타비적 자만심을 버리고 토론에 의하여 종당은 나와 남은 서로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쉽게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④아무리 작은 일에 대한 사고의 결과일지라도 그것이 항상 대국에 통할 수 있도록 사고해야만 할 것입니다.
⑤출세·성공에 마음이 조급하여 정도를 일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자중과 인내로써 올바르게 「찬스」를 포착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다른 총장의 훈사와는 달리 경희대 조영식 총장은 「근대화에의 기상」을 고취시키고 있다. 『밭이 아니면 갈려고 하지 않고 평지가 아니면 심으려 하지 않는 인습적 소극성과 가난하면서도 절약하려하지 않고 못살면서도 정신차릴 줄 모르는 후진성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서 어찌 우리들의 보다 나은 생활향상과 복리증진을 막연히 기다려 볼 수만 있겠읍니까?』 -.
그러나 총장들마다의 훈사는 어느 수십년 전에도 똑같은 조였을 고담준론과 공소한 이상과 혼미한 충고가 눈에 뛴다. 한편의 명연설이 아닌 진지한 지성인에게 주는 교훈은 아직도 아쉬운 오늘의 졸업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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