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늬만 한옥 허물고 어색한 이름 떼고 새 시대 새로운 집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2호 22면

1 신무문을 나서면 보이는 청와대. 2 북악산과 청와대 그리고 경복궁.

청와대의 새 집주인이 선출됐다. 집 비워줄 사람과 5년 전세(?) 들어올 사람들의 이사가 곧 시작될 터다. 집이긴 한데 국가의 운명을 거머쥔 사람의 집이라 조심스럽다.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청와대 이전 문제에 대해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자.

최명철의 집 이야기 <14> 청와대

우선 집터의 문제. 세종로 광장에서 바라보는 경복궁 전경은 꽤나 아름답다. 세계사에 드문 600년 왕조의 궁궐 모습으로서 손색이 없다. 광화문과 근정전 북한산에 이르는 축도 볼 만하지만, 옆으로 비껴서 있는 북악의 빼어난 자태는 자꾸 눈길이 가는 풍광이다. 경복궁 후원을 돌아 계단을 오르면 개방한 지 오래지 않은 북쪽문 신무문(神武門)에 이른다. 문에 들어서는 순간 한눈에 꽉 차게 들어오는 북악산 봉우리는 압권이다. 그런데 순간 눈에 걸리는 게 있다. 예의 푸른색 기와집과 철제 대문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일제시대 북악을 배경으로 남산 신궁에 이르는 축선상에 총독관저(‘大’자 건물)를 건립하는 순간부터 생겨난 모습이다. 조선 정궁 경복궁 경내에 총독부청사(‘日’자)를 짓고 구 서울시청건물(‘本’자)까지 건물로 쓴 ‘大日本’의 완성인 것이다.

집 짓지 말라는 터에 일본이 세워
예부터 우리나라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면서 사람이 사는 집(양택)과 죽어서 머무는 곳(음택)에 유난히 공을 들여 왔다. 천지인 사상의 요체 또한 사람으로서 하늘의 뜻만큼 땅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키워 왔다. 즉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제한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체계를 갖추어 왔다. 경복궁 경내의 신무문 바깥은 자연의 공간이지 일상적 활동의 집터일 수는 없는 것이다.

3 신무문을 통해서 본 청와대.

조선시대 이곳은 신무문이라는 글자대로 신(神)의 공간인 칠궁*과 과거시험이나 무술연마를 위한 무(武)의 공간 경무대*만 있었다. 또한 현 관저 터에 있다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바위 위 각자 또한 경복궁 또는 한양 전체의 터를 일컬어 이름한 것이지 바로 눈앞의 집터를 가리킨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발상이다.(*는 청와대 홈페이지 참조)

말하자면 집 짓지 말라는 곳에 일본이 저질러 놓은 잘못을 건국 후에도 이어받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더 크게 훼손시킨 상태가 현재의 청와대 모습인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예전부터 청와대 이전을 주장해 온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교수는 “특히 청와대 터는 북악산에서 이곳을 거쳐 경복궁 근정전과 광화문을 연결하는 용(龍)의 맥세 중심통로의 출발점으로 기를 모아서 명당에 공급하는 수문 역할을 맡는 곳으로 그곳에 대형건물을 축조하는 것은 서울의 목을 조르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다음은 집의 문제다. 하루 하루의 일상사가 이루어지는 집에서는 편리함이 최우선이다. 하물며 국가 대사를 밤낮으로 챙겨야 하는 대통령과 그 식구들의 동선은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사는 곳 따로, 일하는 곳 따로다. 더구나 비서실·영빈관·춘추관이 각각 걸어다니기에도 애매한 거리에 별도로 나뉘어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변인이었던 박선숙 전 의원은 “마무리 보고를 끝내고 어스름한 저녁에 홀로 떨어져 있는 관저에서 나올 때면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언제부턴가 소통이 안 되는 구중궁궐로 불리고 있다. 미국의 백악관, 프랑스의 엘리제궁, 영국의 다우닝가 10번지 사례에서 보듯 대통령의 ‘삶과 일’은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더구나 청와대 본관은 가짜 한옥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나름 근정전을 본떠 제왕적 건축형식을 갖추었어도 콘크리트로 지어진 한옥은 국가적 망신이다(이미 콘크리트로 지어진 구 광화문은 철거돼 서울 역사박물관 앞마당에 속살을 보이고 전시되어 있다). 국가 한옥센터를 만들고 신 한옥 문화를 한류로 이끈다고 수백억원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국가의 상징으로 보여지는 집은 가짜 한옥이라니?

품격있는 대통령 집엔 어울리지 않는 이름
또 다른 문제는 이름이다. 4·19로 탄생한 윤보선 대통령 시절 미국의 백악관(White House)을 모방해 청와대(Blue House)라 하고, 석조건축의 역사에서 의미를 갖는 하얀 대리석에 견주어 우리나라 전통의 청색 기와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어진 5·16으로 비롯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영어로 블루가 갖는 의미를 꺼려했던 고 육영수 여사는 영문으로 ‘Chong Wa Dae’라 쓰게 했고, 중화주의에 근거했다는 동방색깔 청색을 싫어했던 일부 참모들은 ’황와대‘(Yellow House)를 주장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들이 있다.

더구나 ‘대(臺)’의 뜻은 높고 평평한 건축물, 높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으로서 조선시대의 경무대나 육군사관학교의 화랑대 또는 베이징의 조어대처럼 쓰이는 것이지 품격 있는 대통령 집의 이름에 붙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세계 열강의 사이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국력을 키워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의 역사에서 스스로 낮추기와 큰 나라 따라 하기로 살아남았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의 국격에 걸맞은 당당한 우리의 모습을 갖출 때가 되었다. 1800년에 지어진 미국의 백악관이 200년 넘게 세계를 호령했듯 한반도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이 순간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속담처럼 새로운 대통령의 집을 새로운 건축의 역사로 준비해야 한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