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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위기 ‘3업’으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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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창수
중앙대 교수·경영학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교육 분야의 최대 화두는 ‘반값 등록금’이었다. 등록금 동결만으로도 박수 받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반값 등록금’이라니 이보다 더 유권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호재도 없다. 요즘같이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선 등록금에 대한 체감지수가 더 민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가 국민의 관심사가 된 데는 대학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한몫 거든다.

 반값 등록금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대학의 현주소를 국제 비교 수치로 들여다보자. 고등교육 이수율 세계 1위에 과학경쟁력 5위-. 하지만 대학교육이 사회에 부합하는 정도 39위에 고등교육 경쟁력 46위, 그리고 고등교육의 질 47위-.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경쟁력과 질적인 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다. 대학등록금 수준은 구매력 환산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지만 1인당 고등교육비 수준은 OECD 평균의 70%다.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많은데 대학이 학생들을 위해 투입할 재정 규모는 작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 한목소리를 내는 반값 등록금 관련 정책은 대학교육의 악순환 구조를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우리 고등교육은 현재 세 가지 어려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다. 저출산에 따라 입학자원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재정난이 심화된다. 재정의 어려움은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대학 3난(難)’은 결국 청년실업을 심화시키며 사회 전체의 위기로 전환된다. 사회가 에너지와 지혜를 모아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만 대학의 위기는 해소된다. 반값 등록금 논의에 앞서 고등교육의 질 제고와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고색창연한 대학의 기능은 교육·연구·봉사다. 이를 ‘3업’(학업·취업·창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주목하고 싶다. 양질의 인재 양성, 취업·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대학 재정 확충에 적합한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대학경쟁력이 강화되면 해외 유학생이 들어와서 학령인구 감소에 완충 역할을 하고 장기적으로는 연간 5조원에 달하는 교육수지 적자를 일정 부분 감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대학이 많아지면 우수한 인재 배출로 대졸 실업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신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은 ‘어떻게 하면 대학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하는 평범한 원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 대학의 경쟁력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인가를 정하고, 이에 맞추어 반값 등록금을 포함한 여러 정책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대학도 대학경영의 패러다임을 스스로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교육 과정을 ‘3업 실현’에 적합하게 재편하고 특성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경영을 건실화·다양화해야 한다. 스스로 잘하는 대학·학과를 지원하고 학생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대학·학과는 시장에서 스스로 퇴출당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제한과 관리, 승인과 통제보다는 자율과 책무, 지원과 성과라는 단어가 대학정책의 핵심 키워드가 돼야 한다.

 대학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치권과 정부·대학·학생 등 관련 주체들의 사회적 대타협을 고려해볼 만하다.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유럽 국가에서는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종종 해결한다. 미국은 1862년의 제1차 모릴법(Morrill Act)을 제정해 ‘랜드-그랜트 칼리지’(land-grant college)를 만드는 대타협을 이루어낸 바 있다. 주립대학 설립을 쉽게 하기 위해 정부가 무상으로 땅을 제공하는 방안이었다. 이는 오늘날 미국을 이끄는 원동력인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도 반값 등록금 논쟁을 넘어 대학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타협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 창 수 중앙대 교수·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