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김정일 사망 1년 … 변하지 않는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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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년 전 오늘 북한 김정일이 사망했다. 당시 27살이던 셋째 아들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북한에 새로운 변화가 일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했었다. 북한도 외신에 변화 조짐을 시사하는 소식을 지속적으로 흘렸다. 김정은은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억눌린 북한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듯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만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국제사회는 김정은에게 걸었던 변화의 기대를 접었다. 지난 12일 장거리미사일 발사가 결정적 계기였다.

 지난 1년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김정일 시대의 대내외 정책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지난 4월 15일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말뿐이었다. 북한의 경제정책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을 거의 손대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김정은이 몰두한 것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 일이었다. 김정일 시대 비대해진 군부를 길들이기 위해 김정일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했던 군부 4인방을 모두 제거했다. 당과 내각의 주요 인물들도 상당수 교체했다. 그 결과 김정은에 대한 경호가 대폭 강화되는 등 정정 불안의 조짐도 보인다.

 김정일 사망 직후 국제사회가 1차적으로 주목한 것은 핵 문제였다. 최고지도자의 교체로 북한의 핵보유 의지에 새로운 변화가 생길 것인가였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시작부터 무산됐다. 김정은은 지난 4월 개정한 새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함으로써 핵 포기 가능성을 사실상 원천 봉쇄했다. 동시에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지만 이례적으로 8개월 만에 다시 시도해 지난 12일 성공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한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이 되겠다는 의사를 대내외에 분명히 한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김정일 시대에 되풀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 방안을 놓고 다시금 논쟁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은 “인민의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공언과는 달리 미사일 개발과 평양 시 재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사업에만 수십억 달러를 퍼부음으로써 주민들의 생활개선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수 지도층을 제외한 대다수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수시로 보위부와 보안부를 찾아 “불순분자들을 짓뭉개 버리라”고 주문하는 등 주민들에 대한 억압적 통제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불량국가’ ‘21세기 국제사회의 이단아’의 오명(汚名)을 벗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제사회와 대립각을 더욱 날카롭게 함으로써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 점은 우리의 대북정책에 중요한 고려 요소가 돼야 한다. 북한 변화에 대한 막연한 낙관적 기대는 금물이다. 그렇다고 한반도의 긴장만 높이는 압박과 제재만이 대북정책의 전부여서도 곤란하다. ‘변하려 하지 않는 북한’을 상대로 어떻게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고차원의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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