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놈 만나냐" 70대女, 치매남편 폭언에 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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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할머니가 치매 걸린 80대 남편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달 11일 남편 정모(80)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불구속 입건된 김모(70·여)씨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씨는 5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과 병원 치료를 함께 다니는 등 정성으로 남편을 돌봐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김씨도 다리가 아파 병원 치료를 다니면서 외출이 잦아지자 남편의 폭언이 심해졌다. 병원에서 돌아온 김씨에게 남편은 “어느 놈을 만나고 돌아다니느냐” “남자를 만나고 얼마를 받은 거냐”며 화를 냈다. 세 아들이 수시로 용돈을 보내주는 등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지만 치매 남편의 폭언을 홀로 감당하기엔 벅찼다. 결국 지난달 10일 밤 안방에서 잠든 남편에게 다가간 김씨는 면장갑을 낀 채 집에 있던 변압기로 남편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함께 살던 막내아들은 회사일로 집을 비운 상태였다. 피를 많이 흘렸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정씨는 목숨을 건졌다.

 범행 후 김씨는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강도가 들어 아버지가 많이 다쳤다”며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큰아들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김씨의 진술에 수상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건물 CCTV에 김씨가 말한 인상착의의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었다. 강도가 자신의 입에 붙였다는 테이프 역시 가위로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범행을 부인하던 김씨는 경찰의 추궁에 결국 세 시간 만에 범행을 자백했다. 김씨는 당시 경찰에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고 선처를 바라는 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영장을 기각했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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