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3강체제 '안개'

중앙일보

입력

통신시장 3강 체제 재편의 핵심인 파워콤(한국전력 자회사)의 민영화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당초 파워콤은 지분 30%(4천5백만주)와 경영권을 양도할 목적으로 지난 8월10일 국내외 5개 업체로부터 입찰제안서를 받았고, 11월말까지 매각작업을 끝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보통신부가 파워콤의 사업영역 확대 시기를 민영화 이후로 늦추겠다고 밝히고, 이에대해 산업자원부.한전이 "협정 위반" 이라며 거세게 반발하면서 매각작업이 꼬이고 있는 것이다. 한전은 9월초 입찰참여업체에 사업제안요청서를 보내기로 한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이에따라 연내 파워콤을 민영화하고 통신시장 제3사업자를 출범시킨다는 정통부의 구상도 안개 속에 빠져들고 있다.

◇ 왜 싸우나〓가장 큰 문제는 파워콤의 사업영역 확대에 대한 견해 차이다.

산자부.한전은 매각 이전에 현재 기간통신사업자(약 32개)에만 통신망 임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사업영역을 전기통신사업자(부가및 별정통신사업자 약 4천개)에까지 확대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통부도 이에 동의했다" 고 말하고 있다.

이에대해 정통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 며 "당초 파워콤 민영화 계획은 사업영역 확대와 무관하게 잡혀있던 것" 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정통부는 지난 8월말 파워콤의 업무영역 확대 시기를 공식적으로 민영화 이후로 연기했다.

양측의 다툼은 개별기업.개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접속서비스(ISP)를 놓고도 벌어지고 있다.

정통부는 "파워콤의 현 고객들이 ISP사업을 하고 있다" 며 "파워콤이 같은 사업을 하면 고객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파워콤의 가치가 떨어질 것" 이라며 불허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산자부는 ISP사업은 기간통신사업자라면 누구나 ''신고'' 만으로 할 수 있는데도 불허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 입찰참여업체 입장〓현재 입찰제안서를 낸 국내외 업체들은 5개.

국내에선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이, 해외에선 싱가포르파워, 뉴브리지캐피탈과 미국의 통신장비업체 A사다. 이들 업체 관계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미국 나스닥에 입찰에 참여한다는 공시까지 낸 두루넷의 경우 최근 비상대책회의를 갖고 정통부.한전 등에 입찰 일정 조기 재개를 촉구했다.

두루넷 관계자는 "현재 소프트뱅크 등 해외 투자가들로부터 파워콤 지분 인수를 위한 투자유치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나 파워콤 입찰이 돌연 연기됨에 따라 대외신뢰도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하나로통신도 두루넷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특히 해외 입찰참여업체들은 정부 부처간 싸움 때문에 매각 일정이 좌지우지되는 것에 실망을 표시하고 이탈움직임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향후 전망〓현 상황에서는 산자부와 정통부 중 어느 한쪽의 양보 없이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게 돼 있다.

문제는 통신 3강 재편 작업이 지체될 경우 재무구조가 부실한 후발통신사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양승택 정통부장관도 "통신시장 3강 재편을 서두르는 이유는 연말에 일부 통신사업자들에 부실채권이 대거 돌아올 우려가 있어 이를 방지하자는 의도도 있다" 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통신3강재편이 절실한 정통부와 민영화가 시급하지 않은 산자부의 입장을 감안할 때 시간이 흐를수록 정통부가 양보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파워콤의 사업영역을 전기통신사업자까지 확대해 주되 ISP사업은 민영화 이후에 다시 논의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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