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이상은 "진짜 가수는 반짝 인기에 초연"

중앙일보

입력

청바지에 티셔츠,길게 기른 머리,밝고 쾌활한 목소리,활기찬 행동과 웃음….

지난 19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국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씨를 만났다.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씨가 함께 했다.

한씨는 다음달 19일 저녁 8시 서울 올림픽 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음악 생활 32년만에 첫 단독 공연을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 이라고 말하는 그는 들떠 있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올해 쉰세살.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공연장에서 많은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펼치게 된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할 것이다. 공연문의 02-552-9508.

함께 무대에 오를 이상은씨가 한씨와 음악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연습을 위한 스튜디오는 반주를 맡을 전문 연주자들과 공연 기획 관계자들로 붐볐다. 한씨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 아사히 신문의 기자는 한씨와 이씨의 대담 장면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상은〓1997년 일본 후쿠오카 공연 때 처음 뵀었죠. 한선생님에 대한 전설에 가까운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받은 충격이 지금도 생생해요. 로커로서의 순수함이 뿜어져 나오는데 아휴, 너무 강렬했어요.

한대수〓미국으로 건너간 뒤 음악을 계속하려고 노력했지만 뺨만 한대 얻어맞고 포기한 꼴이었다고 할까요. 사진에만 전념했습니다. 초청을 받아 후쿠오카를 찾았을 97년 당시 한국 대중음악을 전혀 몰랐어요. 서태지가 누군지 H.O.T가 뭔지, 하하. 이상은씨도 그때 처음 봤는데 껑충한 외모부터 눈에 확 들어왔지만 특히 목소리가 매력적이었지요. 개인적으로 양희은씨 이후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오늘 우연히 알게 됐는데 선생님과 생일(3월 12일) 이 같더군요. 인연일까요. 물고기 자리죠.

한〓물고기자리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사회생활은 빵점! 하하하.

이〓이번 공연은 첫 단독 공연이시죠.

한〓97년 후쿠오카 공연 이후 10여 차례 공연 요청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공연을 바랐죠. 젊은 기획자와 스태프들이 만드는 이번 공연은 기대가 큽니다.

이〓전성기 때 한국에서 활동을 포기하셨죠. 개인적으로 대중음악 현실이 답답해 외국으로 나간 저로서는 선생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발표한 '이터널 소로우' 가 많은 사랑을 받았죠?

최근 영화 '신라의 달밤' 에 수록곡 '병든 마음 손에 들고' 가 사용되기도 했더군요. 영화는 보셨는지.

한〓네. 특히 제 노래 '하룻밤' 등이 사용된 '공동경비구역JSA' 는 좋더군요. 사실 오랜 세월 지난 뒤 이해되고 사랑받는 음악들이 많습니다. 제 첫 앨범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당장 사랑받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지만 그에 연연해서는 안되지요.

이〓이번 콘서트가 마지막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가수가 자기 음반이 몇장 팔렸는지 알 수도 없는 구조, 출연자를 위한 탈의실도 없는 공연장들, TV에 나가지 않으면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는 현실 등이 뮤지션들을 좌절하게 하지요. 하지만 마지막 콘서트라는 건 너무 아쉽습니다.

한〓록가수가 단독 공연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 정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제 그런 단독 공연을 또 하기엔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있지요. 하지만 작곡.프로듀싱 등 음악 활동은 계속할 겁니다.

이〓펜싱경기장처럼 큰 곳에서 하는 공연은 저는 처음입니다.

한〓오히려 쉽지요.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보이거든요. 하하. 오히려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작은 공연장이 더 어렵습니다.

이〓이번 공연엔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요.

한〓가수로는 이상은씨와 전인권.강산에씨가 함께 합니다. 특히 전인권씨와 제가 한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저처럼 전씨 역시 "몹시 기대되고 흥분된다" 고 하더군요.

이〓다른 장르의 예술인들도 무대에 오르신다고 들었는데요.

한〓아방가르드적인 퍼포먼스 예술을 펼치시는 무용가 무세중씨,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몽골 국립 민속 음악단, 이우창 재즈 쿼텟 등이 협연합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공연이 될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정겹고 허심탄회했다. "우리 오늘은 연습 끝나고 술 안 마시나요?" 라고 묻는 이씨와, "어, 요새는 머리 염색 안하나?" 라고 묻는 한씨는 세대를 초월한 동료 뮤지션으로 느껴졌다. 일시적인 인기와 시류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뮤지션들, 세월이 결국 그들을 인정해줄 거라고 믿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