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刀下有人<도하유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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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호 27면

중국에 만설생화(滿舌生花)라는 말이 있다. 혀 가득히 꽃이 피어나니, 말 잘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혀가 아니라 붓(筆)이 오면 어떨까. 필하생화(筆下生花)는 문인(文人)의 창작력이 뛰어나고, 시문(詩文) 또한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가리킨다. 신묘한 붓 끝에서 꽃이 만개하는 것과 같은 묘필생화(妙筆生花)의 경지를 떠올리게 한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글씨체가 뛰어날 때는 붓 아래 용과 뱀이 꿈틀거린다는 말을 한다. 필저용사(筆底龍蛇) 또는 필주용사(筆走龍蛇)라고도 한다. 글씨체가 거리낌 없고 자유분방하며 힘이 넘칠 때는 용사비동(龍蛇飛動)이나 용사비무(龍蛇飛舞)라는 표현을 쓴다. 그 붓 아래 봄바람(春風)을 넣어 필저춘풍(筆底春風)이라 쓰면 그림이나 시문이 생동감 넘친다는 뜻이다.

봄바람은 비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화우춘풍(化雨春風)은 초목(草木)이 자라기에 알맞은 비와 바람을 뜻한다. 양호한 훈도(薰陶)와 교육을 가리킨다. 자고로 천지는 만물을 낳아 기르는 법이다(天地化生萬物). 붓(筆) 또한 삶(生)을 낳을 수 있다. 필하초생(筆下超生) 또는 필저초생(筆底超生)은 남이 곤란한 지경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 글을 쓸 때 그 뜻이나 어휘에 관용을 부여하는 걸 말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마오는 한때 동지였지만 정적(政敵)이 된 류사오치(劉少奇)를 제거하고자 했다. 광란의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배경이다. 이 틈을 타 마오의 부인 장칭(江靑)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류사오치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를 해치고자 했다. 부하가 작성한 ‘왕광메이는 기본적으로 미국 간첩이었다’는 보고서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여기에 ‘일본의 간첩’이자 ‘대만 국민당의 간첩’ 혐의까지 추가했다. 왕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됐다.

이때 마오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라온 형량 선고 문건에 ‘도하유인(刀下有人)’이란 네 글자를 적었다. ‘칼 아래 사람을 살려 두라’는 뜻이다. 왕은 극적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붓 끝에서 사람 목숨이 춤을 춘 케이스다. 우리는 최근 혀 끝에서 국운(國運)이 춤을 추고 있다. 대선 후보 토론이 그것이다. “나는 아무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한 후보의 앙칼진 말이 영 개운치 않다. 광기(狂氣)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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