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광기 '피아니스트'

중앙일보

입력

아마 올해 칸 영화제에서 최고의 수확이라면 이자벨 위뻬르 주연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였을 것이다. 마조키스트적 광기를 특유의 표정없는 연기로 이자벨 위뻬르는 칸에서 두번째 여자배우상을 받았고, 상대역의 베누아 마기멜이 남자배우상과 심사위원상 등 올해 칸에서만 세 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최근 개봉한 '레페티시옹(La Repetition, 리허설)'도 역시 엠나누엘 베아르와 빠스칼 부시에의 팽팽한 연기로 올해 칸에 소개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었다.

빈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인 에리카(Isabelle Huppert)를 중심으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외피속에 감춰진 성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내던진 영화이다. 에리카의 엄마로 대표되는 일상과 에리카가 몰래 배외하는 핍쇼와 포르노 영화관를 여과없이 보여주어 영화는 극단적인 대조를 만들어낸다. 발터(Benoit Magimel)라는 자신의 학생과의 "의도된" 관계가 에리카가 계획한대로 되지 않자 에리카는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찌른다.

엘프리드 제리넥의 원작소설을 미셀 하나케 감독이 영화로 옮겼다. 성유희적 노예화나 고문(에리카가 발터에게 요구했던) 등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될 수 있을까라는 리베라시옹의 평처럼 주인공이 극으로 달리는 이 영화는, 브람스에 대한 열정과 슈베르트에 대한 사랑을 남들에게 피력하는 피아노 교수가 섹스샵의 핍쇼에 연연하는 까닭을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 또는 고도의 자본주의와 야만성을 경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러한 물음만을 던저놓고 아무런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마치 옷매무새를 다시 다듬고 이야기하는 에리카의 대사처럼 '애당초 아무것도 없었던처럼(comme si de rien etait)'.

감독 미셀 하나케는 '퍼니 게임'으로 97년 칸에 입성한 이래, 작년에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알수없는 코드(Code inconnu)'와 올해 '피아니스트'까지 3편을 칸에 소개했다. '피아니스트'의 광기는 프랑스에서 X등급에 해당하는 16세이하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