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개의 붉은 벽돌, 기억을 거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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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승영의 ‘기억을 거닐다’. 2012. 상처 난 벽돌이 바닥에 깔려 있거나 유적처럼 쌓여 있다. [사진 아산정책연구원 갤러리]

‘고독’ ‘후회(regret)’ ‘자기 합리화(self-justification)’ ‘나와 저들(I and others)’ 같은 추상어부터 박영택·노준의·조기영 등의 이름까지. 전시장 벽과 바닥을 덮은 9000개의 붉은 벽돌에는 미술가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 그의 삶에 흔적을 남긴 지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 갤러리에서 7일까지 열리는 김승영(49) 씨의 ‘기억을 거닐다’전에서는 관객이 이 벽돌 바닥을 거닐며 작가의 기억에 공명할 수 있다. 군데군데 깎인 벽돌 바닥과 기둥 틈새엔 초록 이끼와 잡초가 자랐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이 고대 유적 같은 설치를 따뜻하게 감싼다.

 그 옆에는 물웅덩이가 있고, 그 위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작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 동서고금 미술인과 지인 등 1000여 명의 이름이 죽 흘러내린다. 제목은 ‘기억 1963-2012’. 김씨는 “나는 작품을 통해 삶 속에 스며 있는 시간과 삶에 대한 사색-일종의 희망·두려움·불안·욕망·불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유를 꿈꾼다”고 했다.

김씨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고, 국립현대미술관·아르코미술관·광주비엔날레·부산비엔날레 등지에서 전시했다. 02-3701-7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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