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사랑과 결혼은 그랬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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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칠세부동석' 이란 유교적 풍습의 잔재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던 무렵, 한 순박한 소작농 소녀의 첫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짧은 생을 그린 중편소설 '무던이' 는 언제 다시 읽어도 아름답다.

간결한 문장 속에 가슴 아릿한 사연을 에둘러 표현해내는 작가 이미륵(1899~1950) 의 역량이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에 못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간 『무던이』는 그 애잔한 소설에 연필 스케치 선이 살아 있는 담백한 수채 삽화들을 곁들여 어린이용으로 재편집해 내놓은 것이다.

아버지를 여읜 열두살 소녀 '무던이' . 자신보다 어리지만 친절하고 잘생긴 지주집 아들 '우물' 을 처음 보자마자 사랑을 느낀다.

어머니에게 그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었다가 혼나기도 하지만 그후 두 사람은 새록새록 애틋한 감정을 키워간다.

그러나 결국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해 우물이는 도시로 떠나버리고, 무던이는 인근 부잣집에 시집을 간다. 자신을 더없이 사랑해주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 덕분에 새로운 삶의 기쁨에 젖어든 것도 잠시.

무던이는 우연히 꿈결에 우물이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가없는 길을 떠나게 된다.

이미륵의 유작인 이 작품 역시 독일어로 먼저 발표(1952년) 된 뒤 국내에 역(逆) 번역돼 많은 독자들에게 저 기억 너머로 사라져가던 한 시대의 초상(肖像) 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신간은 다림출판사에서 어린이용 『압록강은 흐른다』를 펴냈던 편집자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다시 손잡고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깔끔히 마무리된 편집이나, 옛날 다리미 모양까지 고증해 되살린 그림 하나하나에 '이미륵팬' 이라는 두 사람의 정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이들에겐 혼례 풍습 등 그 시대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알려줄 좋은 기회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책 모퉁이에 대상독자로 '초등학교 3학년 이상' 이라고 표시해놓은 것은 다소 출판사측의 억지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성(性) 묘사 등의 문제야 없다해도, 시대적 상황이나, 평이한 서술에 감춰진 주인공들간의 미묘한 감정 흐름을 소화해 내는 일이 요즘 아이들에겐 5~6학년 이상일지라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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