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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아가씨' 작가 임성한씨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작가와 주방장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아니래요. 근사한 작품만 내놓으면 제 할일은 다 한 셈이잖아요."

최근 30%대의 시청률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MBC '인어 아가씨'의 작가 임성한(42)씨. 신문·방송사를 무대로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딸의 처절한 복수가 전개되면서 일부에선 "너무 사실적이다" "작가가 자신의 얘기를 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1999년 일일극으로서는 최고의 시청률(57.3%)을 기록한 '보고 또 보고'의 작가이기도 한 임씨를 만나기는커녕 연락마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작가는 얼굴이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 얼굴 없는 인터뷰가 이뤄졌다.

-극중 방송작가인 아리영처럼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는 것 같다.

"작가는 경험을 파는 직업이다. 자신의 모든 걸 드러내기 때문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상대방을 모르는데 상대방이 나를 안다는 게 이상할 것 같다."

-극중 주인공인 아리영이 미술·요리·댄스에 국선도까지 못하는 게 없다. 너무 수퍼우먼 아닌가.

"우리 주위에 여자들을 보면 의외로 잘하는 게 많다. 다만 드러내지 않아서 잘 모를 뿐이다. 여성도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그림과 요리는 아리영 만큼은 한다(웃음)."

-대본을 쓰기 전 꼼꼼하게 취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아리영 어머니의 맹인 연기가 너무 과장된 것 아니냐는 소리가 있었다. 실제로 안마시술소에서 주인 아주머니를 취재했는데, 화장하고 요리하고 다림질도 척척 해냈다. 사소한 장면이라 해도 다 현장을 가보고 관련자 얘기를 들어가며 쓴 것이다."

-극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호화 캐스팅이다. 만족하나.

"이번에 원하는 대로 모두 캐스팅이 됐다. 평소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표현했다. 정보석씨는 철없는 아들로, 김용림씨는 애교만점의 여자로, 고두심씨는 이중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결과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매회 시트콤을 보는 듯한 코믹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특별한 의도는.

"남편의 휴대전화 벨소리를 '웬수야 전화받어'로 바꾸거나, 야광팬티를 입고 깜짝 놀라는 장면 등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생활과 관련한 주제일수록 반응이 좋았다."

-'인어 아가씨'가 해외 드라마 '안개비연가'를 표절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절대 아니다. 초년병 시절 한 방송사에 응모한 극본에서 모티브를 땄다.'미로에 서서'라는 제목으로 톱탤런트인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이 복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인어 아가씨'에선 엄마가 아버지로 바뀐 것 뿐이다."

-방송작가로서는 늦깎이 데뷔 아닌가.

"29세에 시작했다. 이전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잡지를 보다가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TV 드라마를 유심히 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무 재미 없었다. 나도 저 정도면 쓸 수 있겠다 싶어 작가협회 작가 과정에 등록했다."

-전작('보고 또 보고')의 성공이 부담이 되지 않나.

"한 드라마를 끝내면 모두 잊어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은 내 노력밖에 없다. 요즘은 손톱 깎을 시간이 없을 만큼 일에 몰두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좋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을 '창작통(痛)'이라 했던가. 그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자신에게 묻곤 한다."죽을 만큼 힘들더냐…." 죽음보다는 글쓰기가 좋기 때문에 그는 다시 펜을 든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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