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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테일 오브 테일즈' 마테오 가로네 감독

중앙일보

입력

이탈리아가 낳은 이미지의 장인 마테오 가로네(48) 감독. ‘고모라’(2008) ‘리얼리티:꿈의 미로’(2012) 등으로 대표되는 가로네 감독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인 영상과 기괴하고 음울한 판타지를 넘나들며 이탈리아의 그늘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테일 오브 테일즈’(원제 Il Racconto Dei Racconti, 11월 24일 개봉)는 그런 그가 처음으로 아예 판타지 장르에 착안한 작품. 17세기 이탈리아 환상 동화를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색채로 스크린에 새겼다. “마테오 가로네 감독이 변했다”는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그는 “원래 모든 영화에는 동화적 측면이 있다”며 태연하게 답했다. 또다시 고전 동화를 토대로 한 차기작 ‘피노키오’ 촬영 준비에 한창인 가로네 감독. 이제 완전히 판타지영화를 만들기로 마음을 굳힌 걸까? e-메일로 띄운 magazine M의 질문에 그가 빼곡한 답변을 보내왔다.

사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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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탈리아 민화집 『펜타메론』(원제 Penta merone)에 실린 50가지 이야기 중 단 세 편을 선택해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에 담았다. 이 이야기들의 어떤 점에 끌렸나.

“『펜타메론』의 첫 번째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닷새 동안 서로에게 49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힘이 있으면서 사실적이며 지금 시대에도 공감을 자아낼 진실한 이야기를 찾는 데 무게를 두었다. 무엇보다 상상력이 가장 뛰어난 이야기를 고르고 싶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세 편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두세 편 더 있었고, 이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써 보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 담지 않은 이야기는 다음 영화나 TV 시리즈를 만들 때 쓰기 위해 아껴 뒀다.”

이 고풍스럽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요즘 사람들에게 어떤 공감을 일으킬까.

“‘테일 오브 테일즈’에 실린 세 편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연령대의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머니도 있고, 어른이 되기 전의 소녀도 있다. 아들에 대한 집착과 세대 간의 갈등, 어른이 되기 위해 소녀가 겪는 폭력적 상황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4세기 전에 나온 이야기가 현대의 과도한 성형수술 풍토를 풍자하는 점도 놀라웠다. 지나친 욕심과 집착이 파멸로 이어지는 것은 요즘 관객도 공감할 만한 주제다.”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 방언으로 구전된 민화들의 각색 과정이 까다로웠을 텐데.

“잠바티스타 바실레(1575~1632)가 집대성한 민화집의 기본 감성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 영화에 깔린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원작에 깃들어 있던 것이다. 오랫동안 고심해 이야기 세 편을 선정한 후, 시나리오에서 각 이야기를 하나로 잇는 작업을 했다. 사실 공통된 주제를 염두에 두고 고른 것이 아닌데도, 이야기 사이에 강한 연결성이 느껴져 신기했다.”

세 이야기가 극 중에서 매우 긴밀하게 교차된다. 이야기 간의 교차점을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목표가 있다면.

“내가 연출한 전작들은 현실에서 출발해 그 현실을 환상적 문맥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더 많았다. ‘테일 오브 테일즈’는 그 반대였다. 환상에서 출발해 가급적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로 만들고자 했다. 편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각 이야기 속 여성들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두드러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영화의 주제가 더욱 분명해 보이리라 생각했다.”

한때 화가를 꿈꿨기 때문일까. 이번 영화도 장면 장면에서 고전 회화가 연상된다.

“비주얼 면에 있어 주요한 모티브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판화 연작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변덕들)’에서 빌려 왔다. 고야의 기묘하고도 경이로운 그림들은 바실레의 민화집이 분출하는 핵심적 느낌을 모두 담고 있다. 두 작품 다 기괴한 인간 본성을 잘 그려 냈다. 또한 현실과 환상, 코믹함과 섬뜩함을 넘나들며 작품에 흥미를 더한다. 이는 내가 영화에서 보여 주고 싶었던 것들이다.”

영향받은 이탈리아 영화감독으로 마리오 바바(1914~1980),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1922~1975) 등을 언급한 적 있는데.

“바바 감독의 공포영화 ‘사탄의 가면’(1960), 루이지 코멘치니(1916~2007) 감독의 판타지 모험극 ‘피노키오의 모험’(1972),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 감독의 멜로영화 ‘카사노바’(1976), 마리오 모니첼리(1915~2010) 감독의 코미디 모험극 ‘브랑칼레오네 부대’(1966) 등이 있다. 이들 중 몇몇 작품에서는 환상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는데, 그런 면을 ‘테일 오브 테일즈’에도 녹여내고 싶었다.”

사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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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야기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야기가 갖춰야 할 점은 무엇일까.

“아이들을 잠자리로 이끄는 이야기들은 계속 바뀌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속의 핵심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을 탄생시킨 프랑스의 샤를 페로(1628~1703)나 독일의 그림 형제가 집성한 동화들을 봐도 그렇다. 그들의 작품은 후대에 영향을 끼치며 끊임없이 강력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 힘이 바로 핵심 메시지 아니겠나. 나에게 ‘사람을 매료하는 스토리’란, 어떤 캐릭터가 다른 인물 혹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갈등하며 이를 해결해 나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공포와 판타지 역시 당신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혹적 요소다.

“맞는 말이다. 내 전작 ‘박제사’(2002)와 ‘첫사랑’(2004)에서는 확실히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리얼리티:꿈의 미로’에서는 스타일리시한 동화적 무드가 깔려 있고, ‘고모라’는 현실성을 넘어선 어두운 우화다. 특히 ‘박제사’를 떠올리면 기괴하면서도 가슴 아픈 기분이 든다. 사실 이 영화는 바실레의 이야기 중 하나를 섞어 만들었다. ‘옛날 옛적에 거대한 동물들을 먹는 난쟁이 포식자가 있었는데, 그가 한 아름다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사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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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어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에 이어, 유럽 3개국 이탈리아·영국·프랑스가 합작하는 ‘피노키오’를 준비 중이라고. 또다시 동화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라면.

“1883년 카를로 콜로디(1826~1890)가 쓴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은 전 세계에 번역된 이탈리아 베스트셀러 고전이다. 이탈리아 언어와 문화뿐 아니라 산업·정치계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피노키오의 뾰족한 코는 이탈리아의 중요한 상징과도 같다. 항상 영화로 만들고 싶은 캐릭터였으며, 많은 관객이 눈치챘겠지만 ‘고모라’와 ‘리얼리티:꿈의 미로’에도 영감을 줬다. 내 서랍장에는 어릴 때 직접 색칠한 ‘피노키오’ 스토리보드가 여전히 들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 꿈과 ‘테일 오브 테일즈’로 시작한 동화 세계 여행. 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의미에서 영화 ‘피노키오’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테일 오브 테일즈’를 비롯한 당신의 많은 영화들이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에서 영감을 얻었다. ‘피노키오’ 역시 그럴까.

“나폴리를 포함한 남부 지역은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얼굴이 담긴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렇기에 많은 감독들이 그곳에서 촬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원작의 배경인 투스카니 지방을 주 무대로 생각하고 있다. 내년 봄쯤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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