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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KBS 문창극 보도, 저널리즘 기본원칙 지켰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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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각계 인사 482명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KBS 보도를 강력히 비판하는 성명을 지난 22일 발표했다. 이들은 “KBS가 교회 강연의 일부만 인용해 (문 후보자를) 친일·반민족으로 몰아간 것은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너무나 중대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KBS라는 공영방송의 왜곡보도에 입각해 우리 사회가 중요한 사안을 잘못 결정하는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된다”면서 청문회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좌담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학계 인사들은 “문 후보자에 대한 KBS 보도가 저널리즘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두 원로 언론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저널리즘 분야에서 ‘살아 있는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올바른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취재·보도 때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지난 11일의 KBS 메인뉴스 보도를 정파적 입장을 떠나 저널리즘 기본원칙에 따라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저널리즘은 진실을 추구하지만 그 진실은 정치인·철학자·종교인이 말하는 절대적·철학적 의미가 아니다. 사실을 전문적 규율에 따라 다루는 과정 자체가 진실 추구다. 또 전문적 규율은 사실을 수집하고 검증하는 방법이며, 그것이 객관적이어야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KBS는 이런 원칙에 충실했을까. 총리 후보자라는 명백한 공인의 자질을 검증했다는 KBS의 보도 명분 자체는 흠잡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을 처리·검증하는 과정·방법이 진실 추구적이지 않았다. 전문적 규율에 충실하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의 동영상을 수 분으로 짜깁기해 내보냈다. 문 후보자는 총리로 적절치 않다는 주관적 ‘틀 잡기’ 방식을 주로 동원했다. 강연 맥락과 문 후보자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웠다. 강연 내용을 집중분석·탐사보도하지 않고 허겁지겁 내보낸 것도 성숙한 언론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MBC는 지난 20일의 대담프로그램에서 문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40분간 그대로 내보냈다. 강연 내용을 시민에게 가감 없이 보여줘 자율 판단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도 밝혔다. 방영 이후 방송 게시판에는 다양한 관점을 지닌 의견들이 올라왔다. KBS가 이 방식으로 보도했다면 최소한 ‘마녀사냥식 인격살인’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규정 9조(공정성), 14조(객관성), 20조(명예훼손 금지)에 따라 KBS 보도를 심의해야 한다. KBS는 외부 제재 논의에 앞서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란다.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KBS는 재난주관방송사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 정치권 개입 논란으로 사장·보도국장이 물러나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기관인 KBS 보도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KBS는 수신료 인상 요구에 앞서 저널리즘 기본원칙을 먼저 되돌아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