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T 부사장「레스턴」논평
【뉴요크=김영희 특파원】법무장관이 자기가 읽어보지도 못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에 관한 문서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억압한 사실은 비극적인 월남전의 마지막 아이러니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
(893)상표 도용의 상도의 추락|정만영(한국과기연 제 3연구부장)
상표라는 것은 어떤 상품을 생산해낼 때 그 기업의 얼굴이며 그 얼굴에 따른 애칭이다. 따라서 이러한 애칭을 사용자에게 익히게 하려면 그 상품의 진가를 통한 신뢰감을 받기 위한 고유
-
미의 외상 외교-월맹 병상 포로 일방 송환|월맹의 인수 수락과 월남전 앞날
【사이공=신상갑특파원】「하노이」정권은 월남전이래 처음으로 5백70명의 월맹군 포로 송환을 받아들이겠다고 공식 태도를 취함으로써 월남에 그들의 군대를 파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
-
(182)|서울 수복(7)|부역자 처리(1)|6·25 20주 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3년
서울수복과 정부환도를 기뻐할 사이도 없이 제일 먼저 심각하게 고개를 쳐든 것이 소위 도강파와 잔류파와의 대립이었다. 물론 도강파란 한강을 넘어 남으로 피난 갔던 사람들이고, 잔류파
-
선거유세 이모저모|연설유형과 소개와 쟁점과…
후보자들의 강연내용은 그 유형이 여러 가지. 『박 내무장관은 내 부하였고 이 건설장관은 나와 육사 동기생이다. 내가 출마한 뒤 10여명의 장관들이 이곳을 다녀갔는데, 이것은 나를
-
(869)선거…그것으로 끝내자|김봉희(여성문제연구회 회장)
8·15 해방이후 우리들은 수 없는 선거를 치러왔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의원선거 등. 이러한 선거를 치를 때마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이상한 계절풍이 불어닥치게 마련이다.
-
(140)6·25 20주…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돌출부의 혈전(3)|낙동강 공방전(22)
적은 마지막 9월 총공세 때 돌출부에 대해 또 한번 강습을 시도했다. 낙동강 교두보에 대한 8월 공세가 좌절 된지 대체로 10여일 후에 재게된 적의 9월 공세는 그들로서는 승산의
-
(3) 국방성의 입김|뉴요크·타임스=헤드릭·스미스 기
국방성도 닉슨 행정부에 들어와서는 군사 외교 정책상의 영향력을 백악관 쪽에 많이 빼앗겼다. 군부는 민간인 정책 수립자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대통령한테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닉
-
펠레의 이색 3관왕|브라질 잡지가 밝힌 세 가지 「최고」
【브라질리아=최공필통신원】「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본명=에디손·아란테스·도·나시멘토)는 재기의 「톱·플레이어」로서의 명성을 계속 지키고 있는뎨 「브라질」체육계에는 그를 기록 「3
-
(124)|낙동강 공방전(6)|「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동부전선(3)미군 탄약 훔쳐 싸우기도
8월16일 장사동에서 구룡포까지 해상으로 철수한 제3사단은 숨쉴 사이도 없이 17일에 포항시방어전에 다시 투입되었다. 포항이 적수 중에 영영 들어가게 되면 낙동강교두보에 대한 공중
-
(120)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강공방전(분초의 다툼)(2)
낙동강공방전초기의 피아전력을 비교해보면, 적은 병력과 장비가 한계에 이른데 반하여 아군은 상승일노에 있었다. 시간은 분명히 유엔군편이었다. 이때 누가 보아도 상식적으로 이 공방전의
-
신춘 중앙문예 당선 소설|사당
그것은 캄캄한 마을에서 들려온 소음에서 비롯했다. 처음에 가위눌린 듯한 젊은 여인의 외마디 비명, 뒤이어 그 소리는 곡성으로 변해가다가 야무진 남자의 질타소리로 뚝 그치고, 문짝이
-
『흐루시초프』의 회고|제4부 시련의 외교|뉴요크=김영희 특파원|진위 말썽 속의「망명」비록
스탈린 사후에 새 소련 정부와 접촉을 하겠다는 생각은「처칠」의 머리에서 나온 듯하다. 우리가「제네바」회담에 동의한 이유 중의 하나는 위험할 정도로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던 말렌
-
(102)-(15)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3년
(3) 서울에 이어 오산에서 두 번째로 총살을 모면한 이정송 여사는 계속 남하의 길을 재촉하여 천신만고 끝에 마지막 관문인 낙동강전선에 도착한다. 이때는 이미 적지를 한달 이상이나
-
(95)-적치하의 3개월(8)「6·25」20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5) 북괴가 적치 3개월 동안 가장 역점을 두어 강행한 작업은 인간생활의 물 샐 틈 없는 종횡의 조직이었다. 원래 이「조직」은 공산당 특유의 수범인 동시에 장기이기도 하지만 그들
-
(94)적 치하의 3개월(7)|지하의 시련(4)|「6·25」20주 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적 치하 3개월 동안에 받은 인명피해는 기록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16만5천명이 피살되고, 12만3천명이 이북으로 납치되었다. 서울시에서 만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민간인 9천5백 명
-
사회변천과 도의교육(한국교육학회 학술발표 대회)
오늘날 우리사회에 있어 도의교육은 무엇울 목표로 지향해야 할까. 또 바람직한 인간상은 어떠한 것일까. 『사회의 변천과 도의교육』이라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커다란 문제를 놓고 여러
-
(92)-(5)6·25 20주…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2) 전회에 이어 모윤숙 여사로부터 적 치하 3개월의 피신 생활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하겠다. 숱한 사람들이 북괴가 권고한 기만적인 자수에 응하지 않고 지하에서 모진 시련과
-
(91)적치하의 3개월④|지하의시련(1)
수도 서울이 불과 3일만에 적에게 유린된다가 정부의 무계획과 무성의가 겹쳐 대부분의 시민들은 한강 이북에 그대로 갇히고 말았다. 적치 3개월 동안에 선량한 소시민이 겪은 온갖 고초
-
(90) (3) (하)
김팔봉 씨와 함께 인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어 그들의 곤봉 세례를 받은 애지사 문선과장 전재홍씨(당시 이름은 영환)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6·25를 통해 그들의 인민 재
-
파스칼 저 팡세
이제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것조차 쑥스러울이만큼 파스칼 및 그의 『팡세』는 널리 알려져 왔고 애독되고 있다. 위대한 고전의 놀라운 성격은 그것이 시대마다 그리고 각 사람의 심정마다
-
못 건너고만 강 40대 단일화
당헌에 있는 6월 지명대회가 연기된 뒤 보수의 벽을 넘어서야 할 공동과제에서 출발했던 김영삼·김대중·이철승씨 세 사람의 단일후보조정은 24일로 백지화되고 말았다. 유당수의 조건부
-
중동휴전... 평화로 가는 고개들
90일간의 중동휴전이 발효하고 「이스라엘」·「이집트」간 협상이 눈앞에 다가왔다. 미소 정찰위성이 휴전선의 군사력 증강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감시활동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는
-
(56) 제2본영... 수원(3)|「6.25」20주... 3천여의 증인 회견. 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맥아더」원수가 한강전선을 시찰하고 돌아간 그 이튿날인 6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은 군 최고 지휘부의 이동을 단행했다. 바로 이날 아침 미국에서 급히 돌아온 정일권 준장을 소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