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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실 바라며…평양 재대좌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공동취재단】남북이 또다시 평양에서 대좌했다. 남북으로 흩어진 1천만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한 제3차 남북적 이산가족 찾기 회담이 열리고 있는 평양

    중앙일보

    1972.10.24 00:00

  • 대통령 10월17일 특별 선언-전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를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

    중앙일보

    1972.10.18 00:00

  • (상)

    성실과 인내로 난관타개|장기적 안목으로 추진을|이병도 적십자 회담은 본시 이념과「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를 초월해서 순전한 인도주의·적십자정신, 또는 동포애의 입장에서 가족 찾기 문

    중앙일보

    1972.09.18 00:00

  • 북적 대표들 서울 97시간의 결산|드러난 북의 본질…성급한 기대에 찬물

    27년만의 나들이 96시간-. 남녁의 바람을 쐰 북적 대표들의 숨가쁜 서울 4박5일은 끝났다. 가족 찾기 남북 적십자 회담 제2차 서울 본 회담에 참석한 북적 대표단 일행 54명이

    중앙일보

    1972.09.16 00:00

  • 인도와 정치 곡절 속의 험로|남북적 서울 회담 결산과 합의 문서 교환의 언저리

    13일 서울 본 회담에서 좌초 위기에 빠졌던 가족 찾기 남북적 회담은 14일 하오 예정표에 없는 행사의 하나로 쌍방 수석 대표 사이에 합의 문서를 교환함으로써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

    중앙일보

    1972.09.15 00:00

  • 외국 특파원이 본 남북적 서울 회담

    서울에 온 외국 특파원의 눈에 비친 남북 회담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서울엔 현재 2백여명의 외국 특파원들이 와 있다. 그들은 한적 대표들이 평양

    중앙일보

    1972.09.14 00:00

  • 2개의 사상 2개의 입장

    13일 서울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 제2차 본 회담은 2시간여에 걸친 회의 끝에 아무런 합의 없이 폐막되었다. 이 회의에서 한적 측 대표와 자문위원, 그리고 이산 가족을 대표한 이화

    중앙일보

    1972.09.14 00:00

  • 가라앉은 분위기…재회 약속도 미루고|남북적-서울 본 회담장 안팎

    4반세기만에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북의 공식 사절을 맞아 대화가 나누어졌다. 13일 남북 이산 가족 찾기를 위한 서울 회담은 아담하게 단장된 조선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려

    중앙일보

    1972.09.13 00:00

  • 북적 대표단 54명 입경

    제2차 남북 적십자 본 회담에 참석할 북한 적십자 대표 7명, 자문위원 7명, 수행원 20명, 기자 20명 등 일행 54명이 12일 상오 「자유의 다리」를 건너 남북 분단 27년만

    중앙일보

    1972.09.12 00:00

  • 양 대표들 10일 만에 재회-남북 적 서울 회담 북 적 대표 입경하던 날

    단절 27년만에 북의 적십자 대표단 일행이 서울 땅을 밟았다. 남북 이산 가족 찾기를 위한 북한 적십자 대표·자문위원·수행원·기자 등 일행 54명은 12일 상오 판문점 중립국 감독

    중앙일보

    1972.09.12 00:00

  • 상호 이해 치중

    【동경 12일 동화】김태희 북한 적십자사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남북 적십자사 본 회담 북 적 대표 단장은 11일 평양에서 가진 일본 조일 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3일부터

    중앙일보

    1972.09.12 00:00

  • 이범석 한적 수석대표 본회담 개회연설 요지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동포형제가 한자리에 마주앉게 된 이 감회와 기쁨을, 우리는 우리들 조상 영전에 자랑스럽게 고하면서 기어이 열리고야 만 이 첫 회담

    중앙일보

    1972.08.30 00:00

  • 「대화」를 튼 「대화 1년」 팽팽한 신경전… 「남북의 입」을 줍는다

    남북적십자회담은 3백 65일을 끈 가파른 대화의 고빗길을 넘어 본회담의 문턱에 다다랐다. 이어질 듯 끊기고, 끊길 듯 이어지던 끈질긴 대화는 마침내 26년 동안 철옹벽으로 굳은 남

    중앙일보

    1972.08.12 00:00

  • 이산가족 거주지 자유 선택 제의

    【판문점=임시 취재반】3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17차 남북 적십자 예비 회담에서 한적은 본 회담 의제 중 이산가족과 친척의 「상호 방문」 항목을 「상호 방문을 위한 자유

    중앙일보

    1972.02.03 00:00

  • 올 첫 남북 적 회담 개최

    【판문점=임시 취재반】10일 상오 11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새해 들어 처음으로 열린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양측은 본 회담의제중 한적의「상호방문」과 북적의 「자유왕

    중앙일보

    1972.01.10 00:00

  • 가족·친척문제를 선의

    【판문점=임시취재반】10일 상오11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열린 제12차 남북적십자예비회담에서 북 적은 가족 찾기 대상에 친우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후

    중앙일보

    1971.12.10 00:00

  • 가족 대상에 이견 여전

    【판문점=임시 취재반】남·북 적십자사는 11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8차 예비 회담을 갖고 6, 7차 회담에 이어 본 회담 의제에 대해 토의했으나 쌍방 주장이 엇갈려 낮 12시4

    중앙일보

    1971.11.11 00:00

  • 본회담 의제로 답보

    【판문점=임시취재반】3일 상오11시부터 판문점에서 남·북 적십자의 제7차 예비회담이 열려 본회담에서 다룰 의제문제를 논의했으나 6차 회의에 비해 별 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날

    중앙일보

    1971.11.03 00:00

  • 외권상의 변질 정치적 「대결」-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미·중공 해빙의 여파가 한반도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년간 미·중공 적대관계에 말려들었던 남북한은 그들 자신이 적대관계로 동결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서울과 평양은

    중앙일보

    1971.10.13 00:00

  • 이창렬·윤여훈씨

    최두선 대한적십자 총재의 8·12제의에서 비롯된 남·북 이산 가족 찾기 적십자회담은 이창렬·윤여훈 두 파견원의 접촉에서 5명의 대표단이 참가하는 오는 20일의 예비 회담으로 진전,

    중앙일보

    1971.09.16 00:00

  • 엿새만의 구면…미소의 재회|남-북 적십자 두 번째 접촉의 날

    남-북 적십자사가 26일 낮 12시 두 번째로 판문점에서 만났다. 지난20일 첫 번째로 만났을 때와는 달리 긴장이 가시고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만난 남-북 적십자사의 파견

    중앙일보

    1971.08.26 00:00

  • 판문점 남-북 대좌 논평

    남-북한 대표들은 지난20여 년 동안 서로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공산북괴가 남침하여 미국과「유엔」군을 전화에 끌어 들인지 20여 년 동안 말이다. 이제 이 양단 된 나라의

    중앙일보

    1971.08.21 00:00

  • "안녕하십니까" 26년만의 남-북 악수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판문점에 쏠렸다. 20일 정오, 남북한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열기 위해 만난 남-북 적십자사 파견 원들은 판문점중립국감시위원단 회의실에서 탁상을 사이에 두고 마

    중앙일보

    1971.08.20 00:00

  • 「뒤낭」의 절규

    남·북 가족 찾기 회담을 갖자는 대한적십자사의 12일 제안은 완전히 말복더위를 잊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 실현가능성도 그 제안의 무조건적 성격으로 보나 최근의 국내외의 정치·외교정

    중앙일보

    1971.08.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