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 시(詩)가 있는 아침 ] - '트렁크'

    김언희(1953~ ), '트렁크' 이 가죽 트렁크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지퍼를 열면 몸뚱어리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 벌어지는 수취거부로 반송되어 온 토

    중앙일보

    2005.04.20 18:04

  • [ 시(詩)가 있는 아침 ] - '봄·편지'

    이원(1968~ ), '봄.편지' 봄이다 라고 적자마자 그 (봄) 안으로 나비가 날아든다 유리창 속에서 밥그릇 속에서 시계 속에서 접혀진 무릎 속에서도 나비가 튀어나온다 날개가 없

    중앙일보

    2005.04.19 18:30

  • [ 시(詩)가 있는 아침 ] - '혜초의 시간'

    이승하(1960~ ), '혜초의 시간' 또 다시 황사바람이 불어와 눈 비빈다 이 모진 바람 언제부터 불어왔을까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온 시간 바위가 돌이 되듯 세월 부서지고 돌이

    중앙일보

    2005.04.18 18:13

  • [ 시(詩)가 있는 아침 ] -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노향림(1942~ ),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고 부신 햇빛 아래 소리없이 핀 작디 작은 풀꽃들, 녹두알만 한

    중앙일보

    2005.04.17 18:49

  • [ 시(詩)가 있는 아침 ] -'붉은풍금새'

    이정록(1964~ ), '붉은풍금새' 누나하고 부르면 내 가슴속에 붉은풍금새 한 마리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풍금 뚜껑을 열자 건반이 하나도 없다 칠흙의 나무궤짝에 나물 뜯던

    중앙일보

    2005.04.15 20:46

  • [ 시(詩)가 있는 아침 ] - '미도파 백화점을 나와 약 15미터'

    이장욱(1968~ ), '미도파 백화점을 나와 약 15미터' 1 아지랑이, 바람이 쓸어가는 저 나른한 수평선 내 가 왜 이곳에 있을까, 아니 여기는 어딜까 나는 미도파 백화점을 나

    중앙일보

    2005.04.14 20:32

  • [ 시(詩)가 있는 아침 ] - '매월당'

    조용미(1962~ ), '매월당' 神魚는 아홉 번 변해 천 리를 날았고 큰 새는 3년 쉬었다 한 번 크게 날려 했다는데 아홉 번 몸이 변하는 고통을 물고기는 어떻게 견뎌내었나 땅보

    중앙일보

    2005.04.13 20:36

  • [ 시(詩)가 있는 아침 ] - '여수역'

    정호승(1950~ ), '여수역'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중앙일보

    2005.04.12 20:44

  • [ 시(詩)가 있는 아침 ] - '나무는 젊은 여자'

    허혜정(1966~ ), '나무는 젊은 여자' 1 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차갑게 젖어있는 가지와 진흙 묻은 뿌리들 아무런 봉오리도 돋아오르지 않은 회색빛 정경 속에 저 나무는 젊

    중앙일보

    2005.04.11 20:37

  • [ 시가 있는 아침 ] - '반딧불'

    내 가슴속 어두운 방에 반딧불 하나 키웠으면 좋겠네 낮에는 풀잎 뒤 이슬로 숨었다가 밤이면 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깨우는 가장 절실하게 빛나는 언어가 되는 더러는 꽃이 되는 원죄가

    중앙일보

    2005.04.10 18:49

  • [ 시가 있는 아침 ] - '새를 기다리며'

    화가 이중섭의 그림책에서 제주도의 먼 바다나 통영의 비탈진 낮은 마을 그런 것이 보이는 그림 한 장 떼어서 작은 액자에 넣어 걸어놓고 낡은 테이프 잡음이 좀 나기는 하지만 바하 관

    중앙일보

    2005.04.08 18:32

  • [ 시가 있는 아침 ] -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나, 이번 생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

    중앙일보

    2005.04.07 18:31

  • [ 시가 있는 아침 ] -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잗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

    중앙일보

    2005.04.06 18:04

  • [ 시가 있는 아침 ] -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히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

    중앙일보

    2005.04.05 17:58

  • [ 시가 있는 아침 ] - '식목일'

    사람들이 공중에 미래를 그려 보는 날 나무들이 산 채 누워 거리를 질주하고 도살장으로 가는 한 트럭 돼지들이 마지막으로 벌이는 죽음의 카퍼레이드 어려서 가출하다가 꺾꽂이 해 놓은

    중앙일보

    2005.04.04 18:02

  • [ 시가 있는 아침 ] - '1991. 10. 10, 10:10~10:11'

    6번 버스가 도착한다 진행 방향으로 열린 시월이 잠시 밀린다 떨어진 플라타너스 잎 두 개가 몸을 뒤집는다 한 사내 6번 버스에서 내린다 오른발이 허공의 햇볕에 구두와 함께 떠오르다

    중앙일보

    2005.04.03 18:40

  • [ 시가 있는 아침 ] - '고양이는 민들레와 희롱할 때 잡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일은 여태까지 일어나지 않았는데 가장 좋은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고양이 그대는 민들레 대궁, 민들레 꽃 그대가 고양이면 내가 민들레 대궁, 민들레 꽃 고양이는 민들레를

    중앙일보

    2005.04.01 18:34

  • [ 시가 있는 아침 ] - '메시지'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의자 누군가 연 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중앙일보

    2005.03.31 18:37

  • [ 시가 있는 아침 ] - '봄날에 1'

    봄에는 혼자서는 외롭다, 둘이라야 한다, 혹은 둘 이상이라야 한다. 물은 물끼리 흐르고 꽃은 꽃끼리 피어나고 하늘에 구름은 구름끼리 흐르는데 자꾸만 부푸는 피를 안고 혼자서 어떻게

    중앙일보

    2005.03.30 18:57

  • [ 시가 있는 아침 ] - '천일馬화…'

    새들의 건축술은 놀랍지 않나요 거센 폭풍우에도 나뭇가지 하나 잃지 않는 저 까치집을 보세요 하지만 그들은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제 집을 버리죠 '즐기면 레저, 빠지면 도박'이

    중앙일보

    2005.03.29 18:13

  • [ 시가 있는 아침 ] - '빙어'

    그 어느 날 강가에서 속없는 은빛 날고기를 먹었었지. 속이 한한 널 처음 보며 얼마나 눈부셔했던가. 나무젓가락으로 펄펄 살아 뛰는 너를 집어 초고추장에 휘휘 저어 먹으며 얼마나 찜

    중앙일보

    2005.03.28 17:56

  • [ 시가 있는 아침 ] - '여름 寒山詩'

    언제나 적적한 마당을 쓴다 드문드문 빗방울에 지워지다 흐리게 남아있는 산새들의 야윈 발자국 음울한 바위 틈에 찾아올 길 없는 집 한 채 지어놓고 때때로 이끼 낀 물소리 베개하고 바

    중앙일보

    2005.03.27 18:11

  • [ 시(詩)가 있는 아침 ] - '소가죽 구두'

    김기택(1957~ ), '소가죽 구두'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

    중앙일보

    2005.03.25 18:41

  • [ 시가 있는 아침 ] - '정오'

    오븐의 채널이 정각에서 멎는다 늦은 아침이 다 구워졌다 꽃나무 밑에서 놀던 적막은 바싹 익었다 밀가루에 버무려진 세상이 거짓말같이 부풀어오르는 시각 우체부가 벌겋게 달아오른 우체통

    중앙일보

    2005.03.24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