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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장쩌민 만난 김정일이 할 일
중국 방문 5일째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마치 중국 전역을 유람하듯 하고 있다. 지난 20일 새벽에 두만강 하구를 건너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을 방문한 김정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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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양저우서 장쩌민 만났다
2004년 김정일·장쩌민 2004년 4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베이징에서 장쩌민 당시 중앙군사위 주석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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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는 MB, 후진타오는 김정일 만나 … 중국의 ‘양다리 외교’
22일 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일행을 태우고 온 특별열차가 중국 양저우역에 정차해 있다. 역 주변에 중국 당국의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고, 열차 바로 앞에 검은 세단과 미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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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정은 단독 방중 거부했다”
북한 후계자 김정은(27·얼굴)의 단독 방중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북한의 무리한 경호·의전 요구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북 소식통은 22일 “북·중 양측은 최근 김정은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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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정은 단독 방중’ 오보 파동의 교훈
지난 20일 오전 통신사를 비롯한 한국의 주요 언론은 ‘김정은 단독 방중’이라는 오보를 보도했다. 외신들이 인용했으므로 오보는 전(全) 세계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김정일 국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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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세 차례 중국 방문, 김정일 왜
무단장 호텔 나서는 김정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8월에 이어 9개월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이 20일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의 홀리데이인 호텔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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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젠훙 전폭기’ 후진타오에게 다시 요청할 가능성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동선을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활동을 벌일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동선의 정치학이다. 김 위원장은 이전에 이용했던 단둥(丹東)이나 지안(集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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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국 전격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할 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일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해 두 차례 방문에 이어 올해 또 방문한 것이다. 그만큼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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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김정은, 같이 갔나 안 갔나
김정은 20일 중국 땅을 밟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수행원에 후계자인 셋째 아들 김정은이 포함됐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정부 당국은 김정일의 단독 방문에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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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식량난 급해서 달려갔나…‘창·지·투’ 벤치마킹 하러 갔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9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것은 꼬일 대로 꼬인 대내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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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투먼 거쳐 방중” 오보 소동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이 20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천 대변인은 ‘김정은 단독 방중설’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일 전 세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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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디도스 공격 받으면 절대 안 되는 이유!
지난 주말 전국민을 공포에 빠트렸던 디도스 공격의 피해가 우려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은 상황이다. 사전에 대처요령과 전용백신 등을 공급하며 선제적 대응을 한 결과 피해가 최소화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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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4) 몰아낸 대륙의 군대
6·25전쟁에 투입된 병력은 출처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양 진영 각각 127여만 명이었다. 공산진영은 중공군 100만 명, 북한군 26만 명 정도였다. 이에 맞서 한국군 59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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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3) 전선을 밀어 올리다
6·25전쟁 초기 평양으로 투입되는 미 공정대원이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공정대원들은 무장한 상태로 낙하산으로 공중 강하해 작전지역에 침투,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많다. 일반 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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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2) 국군의 힘찬 반격
전투는 사령부 상황판에 올라오는 숫자만으로 치르는 게 아니다. 현장은 숫자 이상의 현실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게 전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장병들의 사기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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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1) 테일러의 다급한 요청
중공군은 기습과 기만 전술에 능했지만 현대전에 걸맞은 체계적인 보급선을 갖추지 못한 게 약점이었다. 사진은 1950년 10월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함께 데려온 중국 민간인 수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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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0) 새벽에 울린 전화
1950년 10월 미 187공수전투연대가 C-36기를 타고 평안남도 숙천 상공에서 공중 강하하고 있다. 육로를 통해 북진하던 유엔군 선발대에 앞서 적 후방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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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69) 몰아치는 비바람
1950년 11월 북진을 거듭해 평안북도 구성까지 진격한 미군의 한 병사가 북한군을 생포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국군과 유엔군은 대규모 병력의 중공군에 밀려 서울을 내준 뒤 휴전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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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68) 태풍 전야의 고요
중공군은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13일 대공세를 벌여 국군이 지키고 있던 금성 돌출부를 치고 들어왔다. 공격에 나서기 직전 중공군의 한 부대가 국군 방어지역을 작은 모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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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67) 화풀이에 나선 중공군
휴전협정 조인 이듬해인 1954년 6·25전쟁 참전 중공군 포로들이 풀려나 당시 ‘자유중국’으로 불리던 대만으로 가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중국은 유엔군 측에 잡힌 중공군 포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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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66) 고비는 넘겼으나
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저격능선~삼각고지 사이의 고개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 모습이다. 중공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고지를 빼앗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 중공군은 휴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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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65) 힘겨운 반격
6·25전쟁 대부분의 과정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맞서야 했던 적은 중공군이다. 아군은 모든 전선에서 중공군과 격렬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사진은 1952년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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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천안함 폭침 배후 김영철 내세우나
남북 군사 실무회담이 8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북측 수석대표 이선권 대좌(오른쪽)와 대표단이 한국군의 안내로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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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군사회담 4월 14일 열자”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 전날인 4월 14일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은 8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고위급 군사회담 실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