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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2)육사졸업생들(15)|장창국
일제하의 우리 독립군 단체는 너무나 넓은 지역에 너무나 많이 분포돼 있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이동하여 그 전체적인 파악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더우기 지도자들이 가명을 사용한 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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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국군 수뇌부
해방 후 우리 국군의 수뇌부는 대체로 광복군·일본군·만주군 출신의 원로들로 구성되어 무난한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광복군 계열에서는 중국군 소장으로 광복군 참모장을 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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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무관학교|
한일합방 한해전인 1909년 우리나라는 군사적으로 또 한차례의 큰변혁을 겪었다. 군대해산 후에도 존속해오던 한국무관학교가 일제에 의해 폐교된 것이다. 신식군대의 간부를 양성키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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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1)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 장창국
일본육사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짚고 넘어가려 한다. 내가 나온 학교라서가 아니다. 일본육사에 대해서 내가 잘알고있어 쓸거리가 많대서도 아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있고 이 글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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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8)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1) 장창국
해아밀사사건으로 고종이 물러나고 순종이 들어선지 꼭 한달만인 1907년 8월1일. 일제의 강압에 못이겨 새임금 순종이 「재정부족」으로 인한 「일시적인 조치」라는 이름아래 군대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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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월7만여원
계씨는 해방후 육사 8기생으로 국토방위의 최일선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5·16직전 예편, 독립유공자로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는 또 71년 벽제 일인위령탑 방화사건을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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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스러진 독립투사
일제말기에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일본인중대장을 군도로 베어죽이고 탈출, 광복군으로 활약했던 광복투사 계의성씨(58·경기도김포군양촌리누산4리198의1)가 생활의 어려움을 비관, 6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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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건리비 추진위 안춘생 위원장
『독립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시작된지 불과 35일만에 2백억원에 가까운 거액의 성금이 답지한 것만 봐도 기념관건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열망이 얼마나 높은가를 쉽게 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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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독립유공자 김문호옹(71·서울무악동현저아파트4동 207호)이 상해임시정부 광복군으로 활약할 당시 김구주석등 임시정부요인과 광복군 간부들이 기념촬영한 사진1장을 건립될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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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선구자」 원혼달래줬으면…
조두남옹, 독립기념관성금 본사기탁 ○…『항일독립투사들의 광복의 꿈이 서린 만주북간도 용정고개의 일송정과 해난강의 물소리를 독립기념관에 담고 싶습니다.』 50년전 겨레의 울분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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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에 중점, 민족사를 포괄"-「독립기념관」건립에 관한 가계의견
민족의 숙원이던 「독립기념관」(가칭) 건립계획이 마침내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계기로 온국민의 성원속에 구체화돼 오는 87년8월15일 문을 열 예정이다. 지난 76년10월 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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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내년 착공|부지·규모 연내 확정…87년 8월 15일 개관
5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독립기념관」이 세워진다. 지난날의 민족적 수난을 되새기고 민족정기를 불어넣는 구심체 역할을 하게 될 이 독립기념관은 범국민 모금운동으로 세워지며, 올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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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아쉬움 남긴 광복특집
광복절 기념 특집극은 일제치하를 겪지않은 해방뒤 세대들에 민족의 수난을 일깨워 주자는데 큰 목적이 있을 것 같다. 그러려면 진실된 역사기록과 그 때의 분위기를 바르게 표현하는 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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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본교과서 내용 「다시 1938년에는 육군지원병제도가 실시되어 조선인도 중국전선에 동원되어 갔다.」 『학병징집은 일제 식민정책의 최후발악의 하나였지요. 그것은 바로 한국의 청년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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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가곡집』펴낸 곽영숙씨
『76년 작고한 바깥양반이 독립군가 보존회를 만들어 그 당시에도 거의 잊혀져 갔던 독립군가 수집과 채보에 나선것은 74년입니다. 올해가 꼭 9년째인데, 그분 뜻이 결실을 보아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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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대 고려대 총장 김준엽 씨
『고대를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대 총장으로 선임된 김준엽 교수(62)는 아직 문교부로부터 인준을 받지 않은 상태여서 학교운영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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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 저 - 대한민국 임시정부사
성신여대 이현희 교수(국사학과·문박)가 최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사」라는 대작을 저술·간행함으로써 금년도 사학계의 큰 수확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저자 이 교수는 대학에서 한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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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파주 염씨 -고려 땐 명문거족으로 이름 떨쳐
한국 사실주의 문학에 금자탑을 쌓은 횡보 염상섭과 독립운동가 염온동으로 대표되는 염씨는 고려조의 명문거족이었다. 75년 국세조사당시 염씨는 4만5천여명으로 인구순위는 61위.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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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맞아 알아본 생존독립유공자들과 가족들의 현황
해가 지날수록 시들어가는 3·1정신-. 조국의 자주독립을 되찾기 위해서 살신성인한 순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도 날로 쇠퇴해가고 있다. 3·1운동 63주년을 맞아 맨주먹과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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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혁명전야⑧
5·16주체와 장도영 총장사이에 서로 주장이 다른 사전관계는5·16 72시간의 소용들이 속에서 묶어 살피기로 하고 일단 5·16주체에 합류한 소수의 민간인 협력자로 얘기를 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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꽹과리가락에 미쳐 70평생
서민들의 애환과 저항정신이 송진처럼 끈적이는 우리네 민속「밀양백중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 가물가물 꺼져가던 이 민속예술을 문화재로서 집대성하기까지엔 광쇠 울음처럼 온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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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의 후손들(9)|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조부묘역 공원 만드는 게 소망|혼기 놓친 세 누이 도움으로 신학공부
독립군 부사령관으로 강양 주둔 일본 수비대를 대파하고 광복군 총사령관으로 일본군을 골탕먹인 지청천 장군의 친손들은 대지23평에 건평11평의 조그마한 한옥(서울녹번동151의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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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김영주는 일군통역 이었다"|36년만에 밝히는 비화
다음 글은 시인이며 본사동서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 이용상씨가 해방36년만에 처음 공개하는 실화다. 1924년 서울태생인 이 위원은 43년 보전에 입학하자마자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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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31돌을 맞아 본사 동서 문제 연구소 추적|납북 인사들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올해로 6·25 동란은 설흔 한해를 맞았다. 동란의 비극 속에서 납북 또는 월북한 인사들은 얼마나 생존해 있으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우리측이 끈질기게 주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