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2)그 애환을 되새겨보는 특별기획|고달팠던 나날

    한국의 첫 번째 「하와이」이민이 정착한 모쿠리어 농장은 하와이 제도의 중심인 오아휴섬 서북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막상 자리를 잡은 농장은 말뿐이었고 진흙탕과 원시 잡목으로 뒤덮여

    중앙일보

    1973.01.08 00:00

  • (616)조선어학회 사건(1)|정인승

    1942년10월1일. 옷깃을 쌀쌀한 바람이 파고들기 시작하는 희뿌연 한 첫 새벽길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 사전편찬 일을 한 피로를 싸늘한 새벽바람에 씻어가며 혜화동 성벽 밑 막바

    중앙일보

    1972.11.22 00:00

  • 명태

    겨울 한철 그것은 맛이 난다. 무우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동태 국은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북어국도 제격이다.「알칼리」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숙 취한 다음이면 꼭 북어 국을 찾

    중앙일보

    1972.11.07 00:00

  • (584)|북간도(4)-이지택|제28화

    용정은 자그마한 시가였다. 일본인도 없고, 우리 나라 사람도 그때는 별로 없었다. 장사꾼으로 정사빈이란 사람이 자투리 (포목) 장사를 하고 있었다. 또 시계 점을 하는 박씨라는

    중앙일보

    1972.10.16 00:00

  • (580)경·평 축구전(25)|이혜봉

    1936년에 경·평전을 결승전에서 우연히 이루게 했던 조선중앙일보사 주최의 전국도시대항 축구대회도 단1회로 끝나고 중단됐다. 그것은 신문사안의 사정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이렇게되

    중앙일보

    1972.10.11 00:00

  • 아악 운율 속 고궁 「파티」|경회루 「리셉션」…남북 대화 1시간 넘어

    12일 밤 북적 대표들을 위한 경회루 「파티」는 8백여명의 인사가 모여 「남과 북」 단 한가지의 화제를 놓고 27년간 끊겼던 대화의 회포를 풀었다. 청사초롱이 켜진 가운데 은은한

    중앙일보

    1972.09.13 00:00

  • 생소한 음질 북한의 언어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적십자 제1차 본 회담은 남북이 같은 민족이라는 뜨거운 감격과 함께 분단 4반세기의 민족적 비감을 같이 안겨 주었다. 민족이 문화공동체라고 한다면, 이는 의사

    중앙일보

    1972.09.05 00:00

  • (2)산·강·길·도시|본사 이광표 특파원 평양 왕래기

    산천은 여구했고 비목도 다를 것이 없었다. 「27년의 세월」에 가렸던 산하가 눈앞에 다가온다. 8월29일 10시40분.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자 펼쳐지는 풍경. 우거

    중앙일보

    1972.09.05 00:00

  • (8)북청

    고향이란, 봄은 봄대로, 어름은 여름대로, 그리고 가을 겨울할 것 없이 철 따라 동심 속에 포개진 추억의 실마리를 풀어 예는 요람이라고나 할까…. 내가 태어난 고장은 동해 바다가

    중앙일보

    1972.08.05 00:00

  • (상) 미-소의 한국연구

    작년 11월「하버드」대학에 진 객 한사람이 다녀갔다.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국립과학「아카데미」의 한국연구부장을 맡고있는「게오르그·김」박사다. 소련국적의 한국인 2세. 그의 부친은

    중앙일보

    1972.07.14 00:00

  • 비주류서 녹음 청취 기피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는 여야중진회담은 백남근공화당의장의 희망에 의한 것이라고. 남북공동성명에 관한 국회보고문제에 있어 당초 이후락정보부장은 『국회가 부른다면 나가서 보

    중앙일보

    1972.07.07 00:00

  • 재방송에 몰려 화재만발|「7.4 물결」이틀째

    7·4발표의 충격은 시간이 지남에도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발표가 있은 4일은 밤늦게까지 거리·다방·가정에서 온통『평양에 갔다 왔다』는 놀라운 이야기에 쏠렸고, 하루가 지

    중앙일보

    1972.07.05 00:00

  • 어사제도와 이조말 사회의 재현|『해서암행일기』를 읽고|최영희

    해서암행일기가 발견되고 더우기 초역되어 중앙일보에 30회에 걸쳐 연재된 일은 기쁜 일이다. 임금의 비밀지령을 받고 지방관리를 은밀히 감찰하는 일은 동양제국에도 있었으나 이러한 일을

    중앙일보

    1972.06.21 00:00

  • 해서 암행일기(1)-숙종 때 암행어사 박만정의 행적

    숙종 22년(병자1696) 3월6일 비가 오다. 땅거미가 질 무렵, 정원에서 전갈이 왔다. 임금께서 정원에 전교 하시기를 앞서 보덕 벼슬을 지낸 박모(만정)와 군자정 이의창 및 이

    중앙일보

    1972.05.09 00:00

  • 한국 주택사 연구로 동경대서 공박학위

    김정기씨(문화재관리국문화재연구실장) 가 『한국주택사의 연구』라는 논문으로 일본 동경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는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건축사분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이 논

    중앙일보

    1972.04.06 00:00

  • (356)발명학회(10)|목돈상

    발명「붐」이 일어남에 따라 이색적인 발명가들도 꽤 나왔고 괴짜행동을 하는 발명가도 더러 나타났다. 그래서 발명학회사무소는 화제가 그칠 날이 없었다. 먼저 괴짜 발명가들을 생각나는

    중앙일보

    1972.01.14 00:00

  • 장마로 공연 못할 땐 밥값에 악기 잡히기 일쑤

    유낭극단의 비애 OK연구단이니,「빅타」가 극단이니 하는 인원구성이나 재력면에서 안정된 공연단체가 등장하기 이전인 1925년 안팎에는『만주 가서 돈벌이해오마』고 떠나는 이른바「유랑극

    중앙일보

    1971.12.21 00:00

  • "북적 판문점 연락사무소 최봉춘은 내 동생이다"

    『북한적십자의 판문점 상설회담 연락사무소 상주직원 최봉춘은 내 동생이다』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24일 서울 종로3가에 사는 최현춘씨(41)는 『판문점에 나와 있는 봉춘이는 틀림없는

    중앙일보

    1971.09.24 00:00

  • (218)남과 북의 포로수용소

    상병포로란 문자 그대로 전투 중 부상하고 적에 잡혔거나 포로생활 중 병에 걸린 군인으로서 전쟁에서 가장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포로가 된 것만도 불행한데 몸마

    중앙일보

    1971.08.23 00:00

  • 실향 20년 월남동포 실태

    월남동포·납북자 가족 등 실향민들은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최저 21년, 최고 26년이란 긴 세월을 고향을 등지고 부모처자의 소식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분단의 설움을 몸소 경험

    중앙일보

    1971.08.13 00:00

  • (219)제15화 자동차 반세기(13) 서용기

    만주사변은 한참 꽃필 단계의 우리 나라 운수업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특히 「트럭」은 군장비취급을 받았다. 함경도·평안도지방에선 자가용·영업용 할 것 없었고 심할 때는 운전사

    중앙일보

    1971.07.30 00:00

  • (218)|자동차 반세기|서용기(제자는 필자)

    1927년께의 일이라고 기억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운수행정당국을 비판하는 운수업자들의 공개성토대회가 열렸다. 철도국이 역 주변의 화물운송업자를 대폭 경비하여 일역일업자 주

    중앙일보

    1971.07.29 00:00

  • (216)|자동차 반세기|서용기(제자는 필자)

    자동차 판매경쟁도 실했다. 1938년께다. 공동 「모터즈」의 지배인으로 함남에 부임한 나는 6개월 동안 차 1대도 팔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경성에서는 서용기하고 이름만 대도 알아

    중앙일보

    1971.07.27 00:00

  • (210)-제자는 필자|제15화 자동차의 반세기(4)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초의 운전사가 된 사람은 서울의 낙산부자 이용문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씨는 앞서 말한 일본 사람 근등 등이 운전사 양성소를 처음 차렸을 때 그때 조선 사람으

    중앙일보

    1971.07.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