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무정… 비운의 혁명가:상(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3)

    팔로군서 활동하며 「조선해방」준비/대장정 참여해 포병장교로 용맹떨쳐/45년말 조선의용군 간부들과 평양에 해방 북조선에는 두명의 장군에 관한 전설이 풍미했다. 그 한사람이 항일 게

    중앙일보

    1991.10.08 00:00

  • (4433)나의 친구 김영주(18)|이용상|호남성서 재회

    나는 시금 쓰고 있는「나의 친구 김영주」를 만나기 위해 가고 있다. 북지 산서성·운성을 떠나 중지 양자강 쪽을 가고 있으나 김영주가 남쪽 멀리 호남성에서 나를 기다리고(?)있는지는

    중앙일보

    1991.04.13 00:00

  • (4432)|나의 친구 김영주(17)-「중국 동지」의 죽음

    일선에서 산채로 포로를 찔러 죽이거나 칼로 목을 치는 것은 일본군에는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희생될 사람이 왜 하필이면 천바이랑이란 말인가. 그는 뭣 때문에 어떻게 하

    중앙일보

    1991.04.11 00:00

  • (4429)제85화 나의 친구 김영주(14)|이용상|중국인이 준 격려문

    인민해방군 천바이랑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사방은 또다시 적막에 싸였다. 나는 교대하러 온 다음 보초에게『이상무』라고 인계한 다음 내무반에 가는 도중 아까 천바이랑이 던져준 종이

    중앙일보

    1991.04.06 00:00

  • (4428)| 나의 친구 김영주 (13)|탈출 카운트다운|이용상

    중국인 이발사 천바이랑이 자기들 「인민해방군」에 많은 조선 동지가 있다는 말은 나에게 크나큰 흥분이고 충격이었다. 이 부근의 산야는 「인민해방군」이라는 팔로군과 「조선의용군」의 활

    중앙일보

    1991.04.03 00:00

  • (4427)| 나의 친구 김영주 (12)|초년 교육병 시절|이용상

    오카모토 대위와 나는 여러 가지 말을 나눴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항상 자기 옆에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의 태도로 보아 통역을 시킬 목적만은 아닌 것 같았다. 후일 알게 됐지만

    중앙일보

    1991.04.01 00:00

  • 「여명」 드라마 제작 뜨거운 대결

    우리 시대의 여명은 실로 어떠했던가. 제국주의에 짓밟히고 이데올로기에 찢겨진 한국 현대사의 한스러운 여명기를 우리 방송들이 집중적으로 조명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약속이라도 한듯

    중앙일보

    1990.07.27 00:00

  • 중국 공군 부사령관은 한국계/팔로군출신…전인대 대표지내/이영태중장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군부부장 조남기중장이 한인(조선족)출신으로 밝혀진데 이어 중국공군 부사령관 이영태 중장(62)도 한인출신임이 9일 밝혀졌다. 이중장은 조씨와 함께 북경 한인사회의

    중앙일보

    1990.06.09 00:00

  • 중국군부 대규모 인사 단행/7개군구 사령관 이동… 고령장성 은퇴

    ◎홍콩대공보 보도 【홍콩=전택원특파원】 중국은 7대군구 사령관급을 포함한 대규모 군인사개편을 단행하고 있다고 홍콩의 친중국계신문 대공보가 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양상쿤(양상곤)

    중앙일보

    1990.05.04 00:00

  •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80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소,반탁단체 임정배제 주장/첫 미소공동위서 스티코프 판깨는 인사말 46년3월6일 평양의 연안 독립동맹이 신민

    중앙일보

    1990.03.14 00:00

  • 강렬한 흑백대비·명쾌한 선묘

    중국의 원로판화가 장망 씨(73)의 작품전이 11월3일부터 9일까지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다. 장망은 중국 요령성 출신으로 1930년대부터 역군. 이화 등과 함께 노신을 도와 중국신

    중앙일보

    1989.10.31 00:00

  • 윤극영옹

    『피아노 치고 노래만 하면 제일이냐. 애들을 위해 뭔가 해야하지 않겠나. 』 1923년3월 동경 유학시절, 소파 방정환이 윤극영의 하숙집을 찾아와 한 말이었다. 훗날 윤옹은 『그날

    중앙일보

    1988.11.16 00:00

  • 〃6·25는 제한전 노린 남침〃

    6·25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연구는 6·25의 엄청난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깊은「상흔의 고통」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질 못해왔다. 그러나 최근 6·25를 체험하지 않은 소장학자

    중앙일보

    1988.09.28 00:00

  • 중국의 "악성"-정율성은 한국인

    현대 중국 최고의 음악가가 해방 전 의열 단원으로 독립 운동을 했던 한국인 정율성이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이 사실은 중국 중앙 군사 위원회가 지난 7월25일 그가 21세 때 (19

    중앙일보

    1988.08.13 00:00

  • 극한속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김원일 소설『겨울골짜기』 김옥섭

    『노을』『불의 제전』 등을 발표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중견작가 김원일씨가 최근 펴낸 장편 『겨울 골까기』는 이 작가가 일관되게 천착해온 작품세계를 또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중앙일보

    1987.06.03 00:00

  • 총서기 사임한 호요방

    지난 1941년 처음으로 등소평을 만난이후 46년간을 등과 운명을 같이해온 등의 오른팔이요 그림자였다. 그는 74년 중공과학원 부원장으로 과학계의 전문인재 양성을 위한 개혁안을 제

    중앙일보

    1987.01.17 00:00

  • (106)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2월5일. 「무초」대사가 와서 「굿펠로」씨가 한국대표로 한국을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는 전보를 미국무성으로부터 받았는데 그것이 어떻게된 영문인지를 알고자 한다고 대통령에게 말했

    중앙일보

    1984.03.12 00:00

  • (37) 국내진정작전|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l940년대로 들어서면서 항일운동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몇몇 독립단체는 항쟁을 계속했고 종전무렵엔 군사진공작전을 시도했다. 군사력에 의한 국내진공은 일본의 패전이 뚜렷해진 마당

    중앙일보

    1984.01.23 00:00

  • (3610) 제79화 육사졸업생들 (63)|제주도의 좌익세력

    46년10월 내가 육사부교장으로 있다가 제9연대를 창설하러 제주도로 떠날 때 육사교장이던 원용덕소령댁으로 인사차 들른 일이 있다. 그때 원소령은 제주도엔 빨갱이가 많으니 조심해서

    중앙일보

    1983.01.14 00:00

  • (3567)제79화 육사졸업생들(20)|장창국|광복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뒤 광복군이 창설된 것은 1940년 9월17일이었다. 그러나 편제만 갖추어졌을 뿐 실제의 부대는 없었다. 외국 땅에서, 그것도 정권이 안정되지 못한 채

    중앙일보

    1982.11.18 00:00

  • (3566)제79화 육사졸업생들(19)|장창국|광복군 계열

    우리 항일 무장운동은 군대해산(l907년)후부터 시작되어 1단계는 국내에서의 의병운동, 2단계는 만주에서의 독립군운동, 3단계는 중국대륙에서의 광복군운동으로 진행됐다. 광복운동에

    중앙일보

    1982.11.17 00:00

  • 올해의 인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등소평을 선정했다. 꼭 50년 전인 1938년엔 장개석 총통이 그 인물로 뽑혔었다. 우연의 역사치고는 너무도 「아이러니컬」하다. 193

    중앙일보

    1978.12.26 00:00

  • (상)강재윤

    북괴 노동당 규약에 의하면「군은 당의 혁명적 무 장력」이 된다. 이것은 당이 혁명정신을 세우기 위하여 군이라는 무 장력을 수단으로 삼는 무력혁명의 본색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중앙일보

    1977.06.25 00:00

  • 만주서 전투중|장경순 (공화당 중앙위의장)

    학병으로 끌려나가 만주에서 팔로군(중공군의전신)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해방이 된지 1주일이 자나도록 일본이 항복한 줄을 몰랐다. 일본 비행기가 날아와 전단을 뿌리면서 국부군에 투항

    중앙일보

    1975.08.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