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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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월5일.
「무초」대사가 와서 「굿펠로」씨가 한국대표로 한국을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는 전보를 미국무성으로부터 받았는데 그것이 어떻게된 영문인지를 알고자 한다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은 「무초」대사에게 「굿펠로」씨는 한국대표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국민들을 무장시키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무기를 구입하고자 하는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우리가 전쟁에 져서 나라를 잃게되면 우리나라의 모든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돈은 무기로 바꾸자>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 무기를 달라고 그토록 사정했었지만 아주 극히 제한된 수량밖에는 얻지를 못하였다. 장면대사는 워싱턴에서 미국사람들이 자기들 수중에는 무기가 없으며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는 모두 보내 버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은 「무초」대사에게 우리 군검경합동수사본부가 중공비밀공작원들을 체포했는데 그들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암살하려고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국산동성 출신으로 팔로군의 공작대원이었던 오복창과 남한비밀공작대장 왕수창을 포함하여 체포된 13명의 중공비밀공작원들은 작년 2월부터 3차에 걸쳐 인천월미도에 도착 후 부산으로 내려온 즉시 배를 구입하여 자기나라로 돌아 갈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놓고 중국요리집에서 일하며 정보를 수집하거나 한의사를 가장하여 한약을 지어주고 침을 놓아 주며 비밀공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에 중국대사관의「쉬」영사가 이 사람들이 중공비밀공작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석방해 달라고 청원해왔다.
대통령은 우리 군검경경합동수사본부에 연락하여 그들로부터 서면요청서를 받도록 지시를 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도장만 찍은 서면요청서를 가져왔는데 대통령은 그들이 직접 서명한 요청서를 받아내도록 지시했다.

<연장들고 문짝고쳐>
「쉬」영사는 한때 밀수사건에도 연루된 혐의를 받은 일이 있었으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그 문제가 더이상 거론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관저의 목책은 꼬마친구들이 넘어올 정도로 허술하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힘들이지 않고 관저안으로 숨어들기 좋게 되어 있는데 대통령은 우리가 거처하고 있는 관저의 떨어진 방바닥은 물론 문창호지 한장도 바꾸지 못하도록 엄격히 절제하고 있다.
심지어 창문의 틀과 문짝도 대통령자신이 직접 연장을 가지고 고치고 있으며 관저경호에 있어서도 돈드는 일은 아예 생각도 못하게 한다.
중공의 암살공작원들이 대통령의 생명을 해치려고 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지금도 우리관저의 경호경관수를 줄이고 한명이라도 더 전투경찰로 내보내 싸우게 할 궁리를 하고 있다.
구국과 독립투쟁으로 살아온 대통령의 목에는 줄곧 일본정부의 현상금30만달러가 걸린채 수 없이 죽을 고비를 넘겨왔으며 여러차례 암살범들의 저격을 받을 때 마다 『사람의 목숨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고 태연자약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나는 어린개구장이들이 넘나드는 나무울타리 쪽이나, 허술하기만한 집안 곳곳을 살펴보면서 마음속으로 불안하기 그지 없다.
오늘 오후에도 대통령은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시내와 주위를 한참동안 돌아보았다.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지 부산의 불결함과 악취를 최대한으로 제거해 보겠다는 강한 집념을 가지고 부산시의 환경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것을 거듭 당부하고 있다.
또 부산의 물사정 역시 피난민의 밀집지역이 아닌 곳까지도 심각한 실정이다. 옷과 침구의 세탁은 커넝 식수도 부족한 터에 화재가 났을 경우엔 어찌나 마음이 졸이는지 사람의 목숨을 10년정도 줄어들게 한다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기서 별로 멀지않은 곳에서 누더기를 걸친 수많은 피난민들이 골목을 메우고 서서 작은 주전자로 물을 얻으려고 몇시간이고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슴이 이토록 아픈데 하물며 대통령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부산엔 식수난 겹쳐>
이제 온 국민이 민족의 자유를 지키기위한 전쟁에서 모든 힘을 합쳐 싸우고 있는 이 때 나는 일상생활에서 물과 전기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더윽 절검하여 고생하고 있는 국민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나누는 것이 내나름대로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이 새봄이 시작되는 「입춘날」이라고 한다.
어서 빨리 날씨가 따뜻해져 추의로 떨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주방에서 일하는 양학준노인의 말에 의하면 쌀한되에 1천1백원이고 보리쌀 한되에 팔백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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