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책과 산 50년 결코 후회한 적 없다"

    『장서와 함께 살아온 반세기-한치의 후회도 없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일제로부터 우리 도서관을 되찾던 날의 환희, 6·25동란 때 자식 같던 책들을 소개시키던 일, 남산도서관으로

    중앙일보

    1983.01.31 00:00

  • 공존공영 내걸어

    이상과 같은 통치수범의 교묘함과 아울러, 문화통치는 기만정치의 대명사라고 할 정도로 기만성이 또한 큰 특색이다. 이것은 문화정치가 갖는 2중구조적성격에서 우러나오는 필연적인 산물이

    중앙일보

    1982.12.16 00:00

  • (3553)-제79화 육사졸업생들(6)=장창국

    일본육사 27기에는 입학자중 2명이 탈락되어 김석원장군, 애국지사 이종혁선생, 채병덕장군 (전 참모총장)의 장인인 백홍석장군과 조선총독부 보도담당관으로 있으면서 언론 통제에 악명을

    중앙일보

    1982.11.02 00:00

  • 성씨의 고향온양방씨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이겨레 어린이들아, 눈물을 함빡 내게로 넘겨다오. 너회를 대신하여 울어주마』 . 일제 민족의 암흑기에 선 이나라 어린이들에게 횃불을 쥐어 준 소년문화 운

    중앙일보

    1982.09.04 00:00

  • 일제의 마지막 경찰서건물 서대문서가 8일에 헐린다

    서울서대문경찰서 (서울미근동156) 건물이 오는 8일 완전히 헐린다. 1936년 일제가 신축했던 연건평 7백98평의 2층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중부경찰서가 지난 80년8월 헐림으로써

    중앙일보

    1982.09.02 00:00

  • 관동대학살고발에 평생바쳐

    YMCA강당에서 59년전의 관동대지진 화살만행을 고발하다 뇌졸증으로 숨진 강석천옹(82)의 장례식은 3일상오10시, 서울정릉1동113 자택에서 거행키로했다. 강옹은 관동대지진 당시

    중앙일보

    1982.09.02 00:00

  • -부곡 될 수 없는 일제학정의 미상-전 조선 총독부 고간 입장에서-팔목신웅

    『「3·1독립운동」은 당시 조선총독부의 공식호칭이 「3·1독립소요사건」혹은 「3·1만세사건」이 었읍니다. 그것을 지금의 교과서에「폭동」이라고 썼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해방전

    중앙일보

    1982.08.20 00:00

  • -부곡 될 수 없는 일제학정의 미상

    일본 교과서 내용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방화했다」등의 유언이 난무하여 정부도 계엄령을 공포해서 군대·경찰을 동원하는 한편 주민들에게 자경단을 조직시켰다....』 일본 동경

    중앙일보

    1982.08.19 00:00

  • -부곡 될 수 없는 일제학정의 미상

    일본교과서 내용 「...학교 교육에서는 조선사는 일본사안에 편입되고 한편에서는 일본어의 수업이 행해지는 등 일본인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이 취해졌다. 『35년, 8년간의 미국유학을 끝

    중앙일보

    1982.08.18 00:00

  • (13)공출

    『어느 날 일본도를 찬 순사와 면사무소직원 너댓명이 집안에 들이 닥쳐요. 감춘 곡식을 내놓으라는 거지요. 어머님께선 당장 먹을 것 두말밖엔 없노라고 했지요. 그러자 다짜고짜 집안을

    중앙일보

    1982.08.16 00:00

  • 약탈·반출...못 돌아오는 해외문화재|광복37돌을 맞아 그 현황을 알아본다

    일제침략 등을 통해 대거 해외 유출된 한국문화재는 조국광복37돌을 맞건만 아직도 「부귀의 객」으로 서글픈 영어의 소장신세를 면치 못한 채 외국박물관들의 구석에 진열돼 서러운 나날을

    중앙일보

    1982.08.14 00:00

  • (12)

    일본교과서 내용 「다시 1938년에는 육군지원병제도가 실시되어 조선인도 중국전선에 동원되어 갔다.」 『학병징집은 일제 식민정책의 최후발악의 하나였지요. 그것은 바로 한국의 청년지식

    중앙일보

    1982.08.14 00:00

  • 한-일합병사등 불모지많다|일제 침략사 연구실태와 읽어 볼만한 책들|체계적 통사없어 아쉬워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 특히 먼 시대의 일도 아닌 구한말과 36년간의 식민지배에 대한 잘못된 기술은 우리를 경악하게 하고있다. 국내학자들은 이에 대해 그간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조목

    중앙일보

    1982.08.11 00:00

  • 신사참배 강요

    > 박치덕 목사 (57·예장고신 서울중앙교회) 는 기독교 신앙에 따라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국민학교 4학년에서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경남 밀양 상남 심상소학교 6학년

    중앙일보

    1982.08.06 00:00

  • 국사편찬위가 분석한 일교과서 왜곡내용

    ◇한일세정서 ▲1904(명치37)년 2월 일한의정서를 체결하고 한국의 안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 그것을 위하여 군략상 필요한 토지를 수용하는 것 등의 권한을 한국으로 하여금

    중앙일보

    1982.08.06 00:00

  • 일본교과서 왜곡부분 학문적토론 여지 없다-국사편찬위원장 이현종 박사

    지난 7월 7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후 바로 일본교과서 왜곡사태를 맞아 한여름 무더위를 가장 바쁘게 보내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인 이현종 위원장. 이번에 일본검정교과서 4

    중앙일보

    1982.08.06 00:00

  • 농지약탈

    >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까요. 저들이 설립한 동양척식회사가 19l0년 합방당시 갖고있던 땅이 1만 정보 남짓했어요. 그게 소위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이듬해인 1919년에는 7만

    중앙일보

    1982.08.05 00:00

  • (1)|안방서도 일어만 쓰게 하고 공용이라니…|우리말 말살 정책|이희승 박사

    일본의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 당사국은 물론 세계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들의 사실 기록이 얼마나 거짓된 날조인가를 입증하는 생생한 증언들을 일제 당시

    중앙일보

    1982.07.30 00:00

  • 일제의 징용

    일본의 평화헌법은 오도된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헌법이다. 그런데 그 오도된 침략전쟁의 첫 희생자는 누구였으며 또 태평양전쟁의 시발인 대륙전쟁의 도발로 가장 많은 출혈을 강요당했던 사

    중앙일보

    1982.07.26 00:00

  • 경복궁

    『광화문이여! 사랑하는 친구여』 떨리는 붓으로 이런 글을 쓴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오! 그대여, 운혼이여! 갈 곳이 없으면 나에게 오라! 내가죽거든 지금 쓰고 있는 나의 이

    중앙일보

    1982.07.13 00:00

  • (27)|「반민특위」(7)|국정의 본산 세종로1번지 34년…명멸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

    반민특위재판에 회부된 피고들의 모습은 갖가지였다. 이래서 때로는 슬픔이, 때로는 분노가 방청석을 휩쌌다.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 민족적 비극은 당대의 지성이랄 수 있었던 최남선·이

    중앙일보

    1982.06.04 00:00

  • (26)「반민특위」(6)

    반민특위 재판정은 언제나 초만원이었다. 그만큼 민중의 눈길이 쏠려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화제의 초점은 서울의 명소였던 화신백화점의 사주 박흥식씨였다. 검거 제1호였던 박씨는 3월2

    중앙일보

    1982.05.31 00:00

  • (25)「반민시위」(5)

    반민 법 시행을 위해 국회는 9월 하순「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각 도에서 1명씩 1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의원장 김상덕, 부위원장, 김상구 의원으로 진용을 짰다.

    중앙일보

    1982.05.27 00:00

  • (24)「반민특위」(4)||국정의 본산 「세종로1번지」34년…명멸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

    정부는 현저한 반민족 행위자는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친일파에 대한 광범한 처벌은 처음부터 반대했다. 인재등용, 그리고 정치·사회적 안정이 더욱 긴요하다는 것

    중앙일보

    1982.05.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