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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9. 건강의 비결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걷기운동을 하고 있는 필자. 나의 하루는 오전 7시부터 갖가지 보고를 받고 그날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일 올라오는 여러 기관의 보고서만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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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8. 직원 사랑
직원 화합을 위해 연 '길가족 체육대회'에서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는 필자. 내가 운영하고 있는 대학.병원을 포함한 가천길재단의'식구'는 5000명을 넘는다. 모두 나와 한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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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7. 경원학원 인수
산둥대 학생교류프로그램에 참가한 100명의 학생을 인천공항에서 환송하는 필자(앞줄 가운데). 1998년 경원대 이사장을 맡은 나는 '21세기 국내 10대 사학으로'란 비전을 제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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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6. 경원학원 인수
1998년 12월 경원학원 이사장에 취임한 필자. 1998년 가천길대학 임청 학장이 최원영 경원학원 이사장을 한번 만나보라고 권했다. 경영난에 처해 있는 경원대 측이 인수자를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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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5. 인재를 찾아서 (하)
이성낙(右) 가천의대 총장과 마틴 폴(左) 독일 훔볼트의대 학장이 이달 초 임상시험센터 공동 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이태훈 길병원 원장. 나는 최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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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4. 인재를 찾아서 (상)
올 4월 20일 뇌과학연구소 개소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는 필자. 현대의학 발전과 의료계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나는 가천의대.길병원 연구진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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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3. 여의사회 회장
1983년 11월 서울 도화동으로 이전한 한국여자의사회 회관의 현판식에 참석한 필자(오른쪽에서 다섯째)와 역대 여의사회 회장들. 1982년 나는 제13대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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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2. 의술 교류
WATTS 보건재단 오덴 총재(右) 일행으로부터 감사의 선물을 받고 있는 필자. 나는 길병원 개원 때부터 기회만 있으면 의료진을 해외로 보내 선진 의료 현장을 체험케 했다.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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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1. 국제교환학생
외국 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해 격려하고 있는 필자. 나는 가천의대를 설립하면서 뛰어난'의술'과 훌륭한 '인성(人性)'을 갖춘 의사를 키우고 싶었다. 우리의 의학도들이 '우물 안 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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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0. 재난구호팀
올 6월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길병원 의료진. 나는 수해 지역 의료봉사단 파견 업무에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폭우의 가공할 위력과 물난리에 따른 재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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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9. 메세나 활동
길병원 강당에서 열린 '환자와 주민을 위한 음악회'. 길병원에는 입구부터 병실.복도까지 사진과 그림 액자가 많이 걸려 있다. 이곳에선 정기적으로 관현악 콘서트가 열린다. 그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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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8. 나의 시련기
인천 구월동 길병원 착공식에서 필자(中)가 이헌기 당시 보사부 차관 등과 첫 삽을 뜨고 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지만, 나 역시 큰 병원을 운영하면서 아찔했던 순간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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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7. 아낄 때와 쓸 때
직접 만든 옷(상의)을 입고 미주동창회에 참석한 필자(왼쪽 두 번째). 매니큐어로 스타킹을 때우고, 양말 구멍을 기워 신는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웃는다. 며칠 전 구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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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6. 모교 사랑
길병원 연수원을 방문한 대야초등학교 어린이들에 둘러싸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필자. 내가 나온 전북 군산의 대야초등학교는 전국 초등학교 탁구대회를 주름잡는 학교다.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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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5. 경인일보 인수
1999년 경인일보 회장 취임식에서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필자(右). 1990년대 들어 의료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평소 염원해 왔던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94년 간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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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4. 모범생의 탈선
중학교 2학년 때 단짝이었던 '세 별 자매'가 기념 촬영했다. 왼쪽부터 김진렬(6·25 때 행방불명), 조순주(작고), 필자. 청소년기에는 착한 모범생이라도 탈선의 유혹에 쉽게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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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3. 나이팅게일 선서식
나이팅게일 선서식에 참석한 간호사들을 격려하고 있는 필자.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원무(院務)직원 등 다양한 직업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간호사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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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2. 가천미추홀봉사단 (하)
수련대회에 참가한 가천미추홀봉사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는 필자. 가천미추홀봉사단은 나의 호(號) '가천(嘉泉)'과 인천의 옛 이름인 '미추홀'에서 따왔다. 인천의 어린 동량(棟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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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1. 가천미추홀봉사단 (상)
가천미추홀봉사단 총재 취임식에서 단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는 필자. 1960년대 미국 유학 때의 일이다. 자신의 '봉사 시간'을 기록한 카드를 매단 줄을 목에 걸고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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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0. 보석과 초음파기
뇌과학연구소 전시관에서 조장희 소장(右)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필자. 나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최신 의료장비에 관심이 남달랐다. 보다 좋은 의료시설로 환자를 완치시키고 싶은 욕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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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9. 훈 할머니
길병원에 입원한 훈 할머니와 손녀들이 활짝 웃고 있다. 왼쪽 둘째는 필자. 훈 할머니. 1942년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캄보디아에 끌려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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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8 제자들
가천의대 졸업생의 목에 청진기를 걸어주는 필자. 강화도 길상산 자락에 있는 가천의대 캠퍼스는 병풍처럼 서 있는 산세를 뒤로하고, 앞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서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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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7. 의과대학 설립
제1회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필자. 나는 1970년대부터 우수한 의료인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설립을 꿈꿔왔다. 78년 의료법인을 출범시키면서 이런 소망은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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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6. 베트남 한센환우
필자(左)와 빈딘성의 잔왕 부주석이 직업훈련원 건립비를 제막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과거에는 불치의 병으로 분류됐던 한센병(hansen disease). 나균에 의해 피부.신경.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