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변화의 수용태세

    문교부는 10일 남-북 공동성명발표에 따른 교육태세확립과 교육자의 자세에 대한 지침을 시달하기 위해 전국 교육감회의를 소집했었다. 7·4성명이후 반공의 교과목을 담당하고있는 일선교

    중앙일보

    1972.07.11 00:00

  • (348)|유격전(17)|백호부대(1)

    8군사령관 밴플리트 대장이 유엔군 총사령부에 보낸 작전보고에서 『백령도의 동키부대는 현재 미정친군 1개 사단에 맞먹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와 같이 서해안 유격부대들의

    중앙일보

    1972.07.10 00:00

  • 사흘째 '국민투표에 붙일 용의 없나'

    국회본회의는 7일「남북공동성명」에 대한 사흘째 질문 계속했다. 북한의 지위와 격에 관한 질문에 이어 야당의원은 이 성명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손실은 어떤 것이며 앞으로 구성될 남북조

    중앙일보

    1972.07.07 00:00

  • 반공교육

    감격은 짧고 대결은 길다. 그렇기에 우리는 7월4일의 경악과 흥분의 순간 다음에 혼란의 여파가 길게 꼬리를 끌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남북공동성명이 하나의 충격이었다면 그럴수록 우

    중앙일보

    1972.07.07 00:00

  • 대화 없는 대결서 대화 있는 대결로

    -북한과의 직접교섭 추구로 통일을 모색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인구 비례에 의한 통일 방안에 변동을 가져온 것인가? 『합의 본 통일 원칙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통일방침과 다른 것이

    중앙일보

    1972.07.04 00:00

  • 한반도 전쟁 위험 감소-NYT 보도

    【워싱턴 29일 합동】「뉴요크·타임스」지는 26일 남·북 적십자 회담과 미국과 소련 및 중공간의 긴장 완화, 그리고 북괴가 간첩을 남파하는데 분명히 실패함으로써 적어도 한반도에서

    중앙일보

    1972.06.30 00:00

  • 적국 속의 취재전선|진실확인 힘겨운 기자들의 고충

    【하노이=앤더니·루이스 기】전시 적국의 수도에서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기자는 지극히 드물다. 지난 5월, 2년 동안의 노력 끝에「하노이」로 들어간「뉴요크·타임스」지 「런던」

    중앙일보

    1972.06.10 00:00

  • (302)휴전회담의 개막(16)|군사분계선 논쟁(4)|「6·25」21주…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1951년 8월 23일부터 10월 24일까지 휴전회담은 열리지 않았는데 공산 측은 8월 22일의 개성 폭격사건을 조작했을 때 휴회가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중앙일보

    1972.03.15 00:00

  • (297)휴전회담의 개막(11)

    (1) 「유엔」군 측 대표의 일원인 「아레이·버그」 제독이 근착 「리더즈·다이제스트」지에서 회고한바와 같이 미국은 늦어도 한 달이면 휴전회담은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중앙일보

    1972.03.03 00:00

  • 조심스런 첫발 "평화 위한 긴 행군"

    【북경=스탠리·카노(WP지) 본사독점특약】21일 북경에 도착한 「닉슨」미대통령은 중공수상 주은래와의 회담예정시간을 갑자기 변경, 모택동의 자택에서 약 1시간 모와 회담한 뒤를 이어

    중앙일보

    1972.02.22 00:00

  • (387)(제26화>경무대 사계|윤석오(제자는 필자)

    유석은 그의 주동으로 군정정무회의가 만든 「남조선조치요강」때문에 군정 연장을 획책한다해서 크게 몰린 일이 있다. 이 조치요강은 당시 안재홍 민정장관의 비서였던 이교선씨가 이화장으

    중앙일보

    1972.02.19 00:00

  • (292)-휴전회담의 개막(6)|한국의 입장(1)

    한국정부와 한국사람들은 중공이 개입하고 이어 「맥아더」원수가 아시아 무대에서 사라지자 전쟁의 전망을 스스로 점칠 수 있었다. 그것은 비관과 좌절감이 교차된 어두운 점괘였다. 한때는

    중앙일보

    1972.02.18 00:00

  • (288)|휴전 회담의 개막-전반부(2)|말리크 시의 배경(2)

    미 행정부 요인이 처음으로 38선 휴전에 동의를 비친 것은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리」가 한국 휴전을 종용한 바로 다음 날인 1951년6월2일이었다. 이날 한국 전쟁과는 여러모

    중앙일보

    1972.02.09 00:00

  • (256)|「「맥아더」원수 해임(5)

    유럽」제일주의(2) 「트루먼」대통령이 11월30일에 행한 『원자탄성명』의 불발로 「맥아더」의 확전안 실현은 영 가망 없게 됐지만 그래도 노병은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

    중앙일보

    1971.11.22 00:00

  • (255)|맥아더 원수 해임(4)|유럽제일주의(1)|6.25 21주 3천여 증인 회견. 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미국외교정책의 기본은 원래가 『유럽제일주의』이지만 아시아에서 한국전쟁을 치르면서도 워싱턴의 그런 정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트루먼과 맥아더와의 대립도 근원은 워싱턴의 유럽제일주

    중앙일보

    1971.11.19 00:00

  • 무장간첩의 인질수법

    최근 판문점에서는 국제적인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남·북 적십자 회담이 진행 중에 있으며, 이를 계기로 북괴는 의식적으로 대 서방 미소정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으나, 그 반면 국내적

    중앙일보

    1971.10.02 00:00

  • (227)남과 북의 포로수용소(19)

    「마크·클라크」대장은 1953년1월에 북괴가 남한 수용소의 포로들을 조종하여 그들을 유엔군 후방의 공산 전투원으로 사용하려던 음모에 관한 전모를 공표하였다. 공산주의 음모에 관한

    중앙일보

    1971.09.14 00:00

  • (224)|거제도 폭동(2)|남과 북의 포로 수용소(16)

    미군이 공산포로를 다루는데 있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일반포로」와 「투항귀순자」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이념 전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은 엄격히

    중앙일보

    1971.09.06 00:00

  • 중공「왕 서방」에 교태 떠는 일조야|문상객 왕국 권 맞은 일본의 암중모색

    【동경=조동오 특파원】지금 일본은 왕 서방의『비단 바람』속에 휩싸였다. 빛이 나는 비단대신 무명옷에 모택동 배지를 가슴에 단 왕 서방이 이른바「일본 제국주의자」의 땅을 밟은 것은

    중앙일보

    1971.08.28 00:00

  • (30)『인도주의』

    주 제=인도주의 일 시=1971년 8월 23일 하오3시 장 소=중앙일보사 회의실 대표집필 김성식 (무순) 김성식 (고대 교수) 김준섭 (서울대문리대 교수) 이우성 (성균관대 교수)

    중앙일보

    1971.08.26 00:00

  • (중)신상초|인도주의와 공산주의

    국제정치의 해빙「무드」가 민족의 자결정신을 촉구하고 있는 정세변화의 도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북한관계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이 새 조류를 타서

    중앙일보

    1971.08.18 00:00

  • 단장 4반세기 내 혈육·그 산하

    이산가족 찾기, 서신왕래를 제안한 최두선 대한적십자사총재의 성명은 온 국민의 찬성과 환영을 받는 가운데 북괴 측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리는 문턱에 있다. 8·15해방을 대부분 이

    중앙일보

    1971.08.14 00:00

  • (209)「6·25」21주…3천여의 증인회견·국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 전쟁 3년|딘 소장의 고난(1)|남과 북의 포로 수용소(1)

    한국 전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통상 전쟁」과는 다른 점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포로 문제는 그 대표적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남과 북의 포로 수용소도 포화가 불꽃튀

    중앙일보

    1971.08.02 00:00

  • 미·중공해빙…이렇게 본다(상)-세계의 3국 구조

    「닉슨」대통령의 북평 방문발표는 국제정치 조류에 획기적인 사건이다. 미·소의 균형에 의한 2대강국 세계로부터 3국 구조로의 이행이다. 미국대 소·중공간의 대립관계가 이제는 서방·

    중앙일보

    1971.07.2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