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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이명래고약’ 대중화 이용재씨
종기치료제의 대명사로 불린 ‘이명래고약’을 대량 생산했던 명래제약의 창업주 이용재(사진) 여사가 12일 오후 7시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프랑스 선교사에게서 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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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서베이 ‘대한민국 상징은?’] 대표 정치인 = 박정희·이승만, 대표 경제인 = 정주영
건국 60돌을 맞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후 두 세대가 흘렀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다.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는 이 오피니언리더 100명에게 물어 건국 후 한국사회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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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서베이 ‘대한민국의 상징은?’] 대표 정치인 = 박정희·이승만, 대표 경제인 = 정주
건국 60돌을 맞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후 두 세대가 흘렀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다.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는 이 오피니언리더 100명에게 물어 건국 후 한국사회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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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가 있는 음악산책] '장수 음악' 판소리
이번 주제는 노래, 즉 '소리'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 좋아하기로 세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마이크 한 번 잡았다 하면 놓지 않을 만큼 좋아하더니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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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떨어진 별들] 국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영원히 가슴속에 품고 살겠다는 건 기억력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오만이다. 산 자들은 계속해 웃고 떠들고, 그리고 잊어야 한다. 그렇다고 떠난 이들의 빈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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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나침반] 외주제작, 진정한 독립의 길은
질 높은 외주 제작프로를 뽑는 '제4회 독립제작사협회(KIPA)상' 심사를 맡으면서 방송에서 독립이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독립의 열매는 자유.자율.자결인데 과연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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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정광수옹 별세
판소리계의 '큰 어른' 정광수(丁珖秀.본명 정용훈)옹이 지난 2일 오후 11시25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94세. 1909년 전남 나주 공산면 복용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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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국악 명인들 예술세계 한자리서 엿본다
정광수.김천흥.성경린.묵계월.이매방 등 우리 국악계의 최고 명인이 오는 29~31일 오후 7시30분 삼성동 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무대에서 공연을 펼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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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은 갔어도 판소리 교육은 이어진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동진(朴東鎭) 명창이 8일 타계함에 따라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머물던 판소리 전수관의 앞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남 공주시 무릉동에 있는 전수관은 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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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타계한 판소리 대가 박동진 명창
8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한 박동진(朴東鎭)명창은 판소리의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 인기의 소리꾼이었다. 68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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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소리꾼' 이명희 서울서 흥보가 완창
"서울에 안숙선(安淑善)이 있다면,대구에는 이명희(李明姬)가 있다." 1995년에 작고한 만정(晩汀)김소희(金素姬)명창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이명희(56) 명창의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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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시대' 내달 4일 종영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매주 일요일 오후10시35분) 가 오는 11월 4일 제198회 '프로골퍼 박세리'편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내린다. 「성공시대」는 97년11월 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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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가객 이준아씨 창작 정가 공연
정년퇴임을 앞둔 황병기(黃秉冀.65) 교수는 창작 생활 40년 동안 가야금 작품 뿐만 아니라 다수의 성악곡을 발표했다. 그의 데뷔작도 1962년 국립국악원 주최 신작발표회에서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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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가객 이준아씨 창작 정가 공연
정년퇴임을 앞둔 황병기(黃秉冀.65)교수는 창작 생활 40년 동안 가야금 작품 뿐만 아니라 다수의 성악곡을 발표했다. 그의 데뷔작도 1962년 국립국악원 주최 신작발표회에서 초연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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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 8시간 완창 음반 낸 이자람
"8시간 완창에 도전했던 것은 제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지요. 다시 하라면, 글쎄요, 아마 20-30대 청중 1천명이 모인다면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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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28)
28. 심청가 스승 김창진 나에게 '심청가' 를 가르쳐 준 분은 김창진 선생이다. 김창룡(金昌龍.1872~35)명창의 막내 동생이다. 그래서 별명이 '끝동이' 였다. 김창룡 명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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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27)
27. 판소리 제자들 나는 우황청심원 CF 출연료 전액을 모 대학 국악과에 장학금으로 맡겼다. 아직도 까마득한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오느라 후학을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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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25)
25. 함께 했던 고수들 다른 명창들도 그렇지만 나는 이정업(1908~74)의 북가락을 최고로 친다. 그 다음이 김동준.한일섭.김득수.김명환 순이다. 악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정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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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21)
21. 나는 광대로소이다 나는 명창보다 광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사실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도 명창의 덕목을 정리한 단가를 '광대가' 라고 했다. 좌중을 웃기고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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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12)
12. 임방울에 도전한 김연수 유성준 선생은 대추나무로 만든 딱딱한 목침으로 임방울씨를 한참 동안 그렇게 때리더니 기운이 다 빠졌는지 별안간 목침을 홱 집어던지며 "나 죽겠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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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11)
11. 똥물이 효험 나는 아버지께 똥물을 받아다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씀도 못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똥물을 먹겠다는 데 선뜻 그러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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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10)
10. 고향 뒷산서 독공 소리를 얻는 것은 배우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스승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독공(獨工)' 이다. 독공이라 함은 스승으로부터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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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9)
9. 정처없는 떠돌이 이 곳, 저 곳 정처없이 떠돌던 가운데 대구에서 머물던 중, 예전에 만났던 일본인 여대생과 다시 만나기도 했지만 그 부모가 결혼 허락을 해주지 않아 결국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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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8)
8. 정정렬 선생의 은퇴 정정렬 선생의 병세는 날로 악화돼 갔다.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동래온천에 내려가 황수(黃水 : 온천물)를 마시기도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고 다시 서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