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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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0. 고향 뒷산서 독공

소리를 얻는 것은 배우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스승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독공(獨工)' 이다.

독공이라 함은 스승으로부터 받은 소리를 삭여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니 자고로 이름난 명창 중에 독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다.

또한 독공은 대부분 외부와 차단된 깊은 산 속의 절이나 오지로 들어가 오랜 기간을 혼자 머물며 '산공부' 를 하는 것이다.

송만갑 명창은 일천일 독공을 한 것으로 유명하고 정정렬 선생 역시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성대를 타고 났으나 부단한 노력으로 결국 득음(得音)을 하게 된 것이다.

조선총독부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했어도 나의 생활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해방을 맞이했다. 일제 말기 침체해 있었던 권번은 해방을 기화로 다시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다시 기생들을 가르치며 여기저기에 다녔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여자들의 등쌀에 견딜 수 없었고, 소리에 전념하는 것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암만 해도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 속 깊이 깨우친 바 있어 나는 고향집으로 향했다.

독한 마음을 먹고 산에 들어가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일단 아버지께 이같은 결심을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네 뜻이 정히 그렇다면 한번 열심히 해보거라" 고 격려해 주었다.

그 당시 살던 집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작은 산에 망한 절이 하나 있었다. 그 절에는 빈대가 너무 많아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망했다고 들었는데 흔적만 남아 있는 절터 앞에는 앉아 있기에 좋은 평평하고 너른 바위까지 하나 있어 소리 연습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곳에 뚝딱뚝딱 움막을 짓고 독공에 들어갔다. 내가 산에 올라간 날은 12월 28일로 기억된다. 움막이래 봤자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워낙 추운 겨울이라 그래도 그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무는 내가 직접 해서 때고 밥은 집에서 막내 동생이 매일 해다 날랐다.

저녁에는 추워 움막 안에서 소리를 하고, 낮에는 밖에 나와 소리를 하는 생활을 매일 계속했다. 혼자 북을 치고 장단을 맞춰가며 소리를 얻기 위해 그렇게 정진했다. 자고 먹는 때 이외의 하루의 모든 시간 동안 소리를 했을 정도다.

밝은 햇살이 움막 안으로 들어오면 하루가 시작된 것을 알았고 밖이 어두워지면 소리를 하다가 푹 쓰러져 잠이 드는, 시간 가는 줄도 날짜 가는 줄도 모르는 생활이었다.

깊은 산 속이라 인적은 없었고 오가는 것은 짐승들 뿐이었다.

언젠가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내리는데 밖을 보니 이름 모를 짐승 한 마리가 우두커니 앉아 내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리에 빠져 그 짐승이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음날 짐승이 앉아 있던 자리에 가보니 밤새 소리를 들었는지 그 부분만 눈이 녹아 있었다. 또한 낮에 소리 연습을 하다보면 노루떼가 나타나 도망도 안가고 내 주위를 맴돌곤 했다.

그렇게 소리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의 몰골은 사람 꼴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하도 고되게 소리 연습을 해서인지 얼굴은 송장처럼 시커먼 빛을 띠었다. 또,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눈도 떠지지 않았고 북을 치는 팔이 올라가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목은 완전히 쉬어서 소리는커녕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때 불현듯 스승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났다.

"목을 틔우려면 똥물을 먹어야 하느니라. "

박동진 <판소리 명창>

정리〓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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