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가' 8시간 완창 음반 낸 이자람

중앙일보

입력

"8시간 완창에 도전했던 것은 제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지요. 다시 하라면, 글쎄요, 아마 20-30대 청중 1천명이 모인다면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99년 10월 스무살 나이에 동초제 '춘향가' 8시간 완창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던 이자람(22.서울대 국악과 4년)씨는 스스로 감행했던 도전의 의미를 이같이 부여했다.

'최연소 춘향가 8시간 완창 기록'으로 이름이 기네스북에 오르는 영예를 얻기도 한 그는 최근 기네스 인증 기념으로 '춘향가' 8시간 완창 실황을 아버지 이규대(49)씨가 대표로 있는 예솔컴 레이블을 통해 8장의 CD로 묶어 냈다.

"당시에는 '내가 정말 8시간 완창을 해 낼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만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두 달 뒤 기네스 인증을 받은 데 대해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었죠" 그러다가 나중에 언론 쪽에서 기네스 인증 사실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세간에 화제로 떠오르자 자신도 비로소 '내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한 것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판소리 한 마당을 7-8시간 걸려 완창하는 것은 과거에는 종종 있었으나 계시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근래에 들어서는 박동진 선생이 완창 행진을 계속하기도 했지만 20대 나이로서는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경상도 동편제의 우람함과 전라도 서편제의 아련함이 융합된 동초제의 대가 은희진 선생(지난해 작고)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운 이씨는 지난 83년 4살의 어린 나이로 당시 가수 출신 방송작가였던 아버지 이씨와 함께 '예솔이'란 동요를 불러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었다.

"'예솔이' 시절에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 그때 우연히 은희진 선생님을 뵙게 됐죠. 선생님이 '소질이 있는 것같다'며 한 번 해 보자고 제의하시길래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것이 결국 예인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습니다"고 설명했다.

서울 등촌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판소리와 인연을 맺은 그는 서울 국악고 2학년 때인 96년 동아콩쿠르에서 '춘향가'로 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97년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문에서 장원을 차지하는 등 경력을 쌓아 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예상과는 달리 짧게 자른 머리에 노랗게 염색까지 한 모습이었다. 외모가 예상밖이라고 하자 "국악인은 다 단정한 생머리여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선입견인 것 같아요"라면서도 "졸업하면 못할 것 같아 한 번 해 봤어요"라고 멋적게 웃는다.

공연할 때도 그 모습으로 하냐고 묻자 "물론 그 때는 가발쓰고 하죠"라며 웃어댄다.

이씨는 본업인 국악뿐 아니라 국내 가요와 팝,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같은 대학 전기공학부에 다니는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영화도 자주 보러 다닌다. "남자친구가 영화광이거든요.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친구의 영향이 컸어요"라며 한창 나이의 여대생다운 면도 내비친다.

국악의 대중화 얘기가 나오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펼쳐 놓는다. "교육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만 봐도 국악은 한두 곡 구색 맞추기로 나와 있을 뿐 양악 중심이거든요"

'20-30대 청중 1천명만 모이면 그 힘들었던 '춘향가' 8시간 완창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얘기도 따지고 보면 그만큼 국악에 무관심한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접근성'의 문제도 제기한다. "젊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면 국악의 대중화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TV도 좋은 방법이지만 현재 TV 국악 프로그램을 보면 아무도 보지 않는 사각 시간대에만 편성돼 있는 것이 현실이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특히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뜻밖에도 8시간 완창 기록을 세운 '춘향가' 대신 '심청가'를 꼽는다.

"하나는 돌아가신 은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셨던 소리이기 때문이구요, 또 하나는 제가 맨 처음에 불렀던 곡이기 때문이에요. '춘향가'도 좋긴 하지만 '심청가'는 특히 극한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이씨는 장래 포부에 대해 '일단 대학원에 진학해 국악 공부를 계속한 뒤 공부를 제대로 한 교수가 되고 싶다'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면 꼭 판소리라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연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