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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못 타는데 중책, 눈 안 와 대관령서 ‘기설제’도
━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13〉 1999년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사무총장 제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사무총장을 맡은 필자(오른쪽)가 김운용 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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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움직이는 건 사람 유치위 판을 바꿔라”
지난 2월 11일 밴쿠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 참석한 이건희 IOC위원(오른쪽).[연합뉴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지금 정관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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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5. IOC 위원 사퇴
옥중에서 세 번째 쓴 IOC 위원 사퇴서. 1년 넘게 구치소 생활을 했다. 2005년 봄, 5월 가석방 예정자로서 모든 심사를 마치고 출소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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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1. 겨울올림픽 유치 시동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계주에서 우승한 한국선수들에게 시상하고 있는 필자. 이제 겨울올림픽 유치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만감이 교차한다. 변명이라고 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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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86.북한 미녀응원단
만경봉호에서 장웅 위원(뒷줄 왼쪽에서 둘째), 북한 응원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월드컵 4강에 흥분했던 우리 국민은 석 달 후 북한의 ‘미녀응원단’에 열광했다. 2002년 9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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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84. 체육회장 사퇴
체육회장 시절 체육회 임원들과 함께 국립묘지를 참배했다.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나는 만신창이가 돼 돌아왔다. 선수단 성적도 좋지 않았고, 김동성 사건으로 여론도 악화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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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78. 2차 방북
2001년 당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인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인(右)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승수 외무장관.2001년 2월 나는 대한체육회장 겸 KOC 위원장 3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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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77.시드니 올림픽(하)
시드니올림픽이 끝난 뒤 청와대에서 열린 선수단 초청 리셉션. 왼쪽부터 필자, 양궁 2관왕 윤미진 선수, 김대중 대통령 부부.서울에서 세계펜싱선수권대회도 열렸고, 국제대회에서 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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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72. 1999년 서울 IOC 총회
서울 IOC 총회 때 자크 로게(左)와 필자가 나란히 앉았다. 2년 뒤 모스크바에서 로게와 나는 IOC 위원장을 놓고 맞붙었다.IOC 총회는 매년 열린다. 올림픽 기간에는 개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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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9. 방콕 아시안게임
방콕 아시안게임 폐막식은 ‘한국 잔치’였다. 왼쪽부터 안상영 부산시장, 필자, 아마드 OCA 회장, 방콕조직위원장.1998년 12월 9일부터 20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아시안게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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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7. 1997년 로잔 총회
올림픽 유치에 나선 만델라 대통령(右)은 필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직접 사인을 해 보내줬다.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끝으로 IOC 부위원장 임기 4년을 마쳤다. 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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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6. 부산 동아시아대회
폐회식에서 이소무라 오사카 시장(左)이 대회기를 흔들고 있다. 오른쪽은 조직위원장인 필자와 문정수 전 부산시장.제1회 동아시아 경기대회는 1993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다. 참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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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4. 한국체육박물관
손기정 선수가 우승 기념으로 받은 그리스 청동투구.IOC 박물관을 보면서 한국에도 체육박물관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제 시대에 발족한 대한체육회가 80년간 민족과 함께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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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3. IOC 박물관
레만호 언덕에 세워진 IOC 박물관. 스포츠 외교는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올림피즘(Olympism)은 스포츠·교육·문화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한다. 근대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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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1. 아프리카올림픽재단
아프리카올림픽재단 이사장이 돼 세네 갈의 디오프 대통령(右)을 만났다.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나는 올림픽을 관장하는 IOC의 위원장이지만 스포츠 이외에 정치를 하는 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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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0. 이건희 IOC 위원
1996년 애틀랜타 총회에서 나란히 IOC 위원이 된 이건희 회장中, 북한 장웅(右)씨와 함께 포즈를 취한 필자.올림픽 개최국으로서 IOC 위원을 추가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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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57. 하얼빈 아시안게임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 개회식.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맨 앞줄 가운데에 필자와 장쩌민 주석이 나란히 서있다.1996년 2월 중국 하얼빈에서 제3회 겨울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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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52.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필자(왼쪽에서 둘째)가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 선수촌 식당에서 선수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맨 왼쪽은 농구선수 허재.대한체육회 회장이 된 뒤 처음 유치활동에 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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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50. 대한체육회장
1993년 2월 나는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IOC TV위원장, 세계경기연맹연합회(GAI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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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44. 릴레함메르 올림픽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는 1988년 서울 IOC 총회에서 스웨덴·불가리아·미국(앵커리지)을 물리치고 94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노르웨이는 서울 총회 이전에도 IOC 총회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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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42. 서울올림픽
지난달 2일 열린 한민대 평화포럼에서 만난 고르바초프와 악수하고 있는 필자. 고르바초프는 “서울올림픽 참가가 소련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말했다.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 역사의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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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37.소련의 올림픽 참가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인 대회가 되려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참가가 필수였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은 아프리카 36개 국이, 80년 모스크바 대회 땐 미국 등 서구권이, 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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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35. IOC 위원이 되다
1986년 스위스 로잔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된 필자가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장기영 위원의 뒤를 이은 김택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1983년 암으로 별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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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28. 76년 겨울·여름 올림픽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양정모(中) 선수. 필자는 76년 인스브루크 겨울올림픽부터 본격적으로 스포츠 외교 현장에 뛰어들었다. 197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