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72. 1999년 서울 IOC 총회

중앙일보

입력 2008.12.13 00:17

업데이트 2008.12.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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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IOC 총회 때 자크 로게(左)와 필자가 나란히 앉았다. 2년 뒤 모스크바에서 로게와 나는 IOC 위원장을 놓고 맞붙었다.
IOC 총회는 매년 열린다. 올림픽 기간에는 개최지에서 열리지만 정작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것은 홀수 해에 독립해서 열리는 총회에서다. 1999년 서울 총회는 서울을 올림픽운동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95년 부다페스트 총회에서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를 꺾고 유치한 것이다. IOC 위원 100명을 비롯해 각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및 사무총장, 유치위원회, 보도진 등 3000여 명이 몰렸다.

6월 12일 신라호텔에서 법사위원회를 시작으로 사전 회의가 열렸고, 총회 개회식은 16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사마란치 위원장 부부가 참석했다. 사마란치는 개회사에서 올림픽운동 현황과 한국의 공헌에 대해 거론했고, 김 대통령은 기념사를 했다. 규정에 따라 KOC 위원장인 나는 환영사를 했다.

서울 총회 분위기는 썩 좋지는 않았다. 우선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의 경제사정이었다. 20세기 마지막 총회를 유치해 기분은 좋았지만 많은 돈을 쓸 수 없었다. 위원들 숙박비와 항공료 등을 모두 IOC가 부담하도록 했다. 10만 달러를 IOC로부터 지원 받았고, KOC 예산은 거의 쓰지 않았다. 솔트레이크 스캔들로 인해 3월에 열린 로잔 개혁총회에서 아프리카와 남미 위원들을 제명한 직후라 IOC 내부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IOC는 이미 갈라지기 시작했다. 사마란치가 주창한 올림픽 가족의 단결은 질시·분열·적대·의혹으로 가득 찼다.

총회 기간에 2006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투표가 있었다. 이탈리아 토리노가 스위스 시온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선정됐다. 피아트의 지원을 받은 토리노 유치위는 수락 연설에서 “특히 한국의 도움에 감사한다”고 언급했다. 스위스의 호들러 위원이 솔트레이크 스캔들을 폭로해 IOC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인식 때문에 시온을 지지하는 위원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사마란치를 비롯한 주류파가 토리노 지지였다.

화난 스위스 측은 “IOC는 스위스를 떠나라”고 떠들었고, 로잔의 IOC 본부 앞에서 데모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마란치에게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정 나가라고 하면 옮겨야지”라고 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로 옮길 거냐”했더니 아니라고 하고, “파리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한다. “그럼 어디냐”고 재차 물으니 “빈”이라고 했다. 그러나 IOC 본부 이전 이야기는 곧 없었던 일이 됐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스위스도 강행을 못한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은 IOC 위원 부부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베풀었다. 나는 위원들을 태릉선수촌에 초대해서 시설과 훈련 과정을 보게 했다. 서울 총회는 대한체육회의 배순학 사무총장, 백성일·오진학·김철주·윤강로 등 KOC 참모들의 스포츠 외교 실습장이었다.

서울 총회 기간에 솔트레이크 사건으로 적대 관계였던 딕 파운드와 화해했다. 아벨란제가 중재 역할을 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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